이집트에서의 일상, 길냥이들과 친구하기.
국경일이라고 쉬어본 게 얼마만이었던지. 그날도 오랜만에 아무런 생각 없이 카메라를 메고 거리로 나섰다. 원래는 택시를 잡아 타고 멀찍이 나갈 계획이었으나 20미터도 가지 못하여 난관에 부닥쳤다. 오늘도 난 길냥이들에게 붙들리고야 말았다.
#원래 친한 냥이들
길을 떡 하니 막아선 은회색 고양이. 이름도, 성도 알 턱이 없다. 널찍한 도로 한복판에서 나를 집사로 만들어 버리는 이 녀석은 언제나 한없이 시크한 표정으로, 그러나 거리낌 없이 다가와 안겨오는 모순된 생명체이다. 실제로 보면 털이 매우 곱다. 한눈에 봐도 다른 고양이들과 구분이 될 만큼 털이 길다. 장모 종임에도 털이 지저분하지 않고 늘 정갈하여 가끔은 사람의 손을 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품게 한다.
가끔 내가 길을 걸어가고 있노라면 이렇게 먼저 다가와 눈싸움 한판을 벌인다. 내가 잠시 쭈뼛거리고 서있으면 내 운동화 끈에 입을 맞추기 시작한다. 한 오분 가만히 놔두면 흥미를 잃고 담장 위로 올라선다. 때론 먹이보다 운동화 끈에 심대한 관심을 갖는 이 특이한 생명체에게 나는 꽤나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뒤에 올라선 검은 점박이 냥이는 예전 포스팅에도 등장했던 적이 있다. 많이 말라서 못 알아보았는데 알고 보니 대문 앞에 새끼를 네 마리나 낳았던 엄마 냥이다.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대문 바로 앞에 새끼를 네 마리 낳았었는데 일주일을 못 넘기고 두 마리가 문에 치여 죽었다고 한다. 다른 두 마리도 죽지 않았을까 이야기를 하더라.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핏덩이를 갓 면한 꼬물이들이… 안되었구나.
#영물, 동네의 귀염둥이
이집트에서는 고양이를 영물로 여기기에 이렇게 집 앞에 사는 길냥이들의 신세가 그리 나쁜 편만은 아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웬만큼 피해를 받지 않고서는 고양이들에게 박하게 대하지 않는다. 대문을 열어놓고 제 집처럼 길냥이들이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하는 이웃들도 있어 늘 그 광경을 신기하게 바라보곤 하였다.
#새 생명, 꼬물이들
바로 건너편 집 담 아래에는 아기 냥이들이 태어나 있었다. 낑낑거리는 소리에 들여다보니 창틀 아래 옹기종기 알로기 달록 이들이 모여있었다. 모두 다섯 마리. 앗, 실수했다. 아무 생각 없이 너무 가까이 다가갔다. 혼비백산하여 구석으로 달아났다.
자네 거기서 뭐하나. 여느 집주인들이 집사들 바라보듯 물끄러미 처다 본다. 그냥. 아기 냥이들이 예뻐서 왔소 :)
몇 발 물러나 조심히 상자 뒤에서 렌즈를 겨냥하였다. 조그만 세 녀석이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덩치가 가장 큰 주황 얼룩이랑 턱시도 검은 냥이는 배짱 두둑이 한눈을 팔고 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경계를 푸는 데 성공했나 보다. 찰칵찰칵 셔터 소리에도 아기 냥이들이 가만히 있는 줄 알았으나-
착각이었다. 주황 얼룩이 녀석 눈을 마주치더니 동생들을 밟고 도망간다.
갑자기 녀석들이 격하게 울어댄다. 뒤를 돌아보니 어미 냥이가 돌아와 있었다. 미안, 별일 없었다오. 네가 엄마였구나. 평소에 많이 거두어 먹이던 녀석이다. 매일 지나가기만 해도 몸을 비벼오던 녀석인데, 오늘은 아기 냥이들 때문인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그래서 준비했다네.
잠깐 집에 가서 물에 불린 사료를 담아왔다. 아기 냥이들도 먹을 수 있을까 싶어 넉넉히 준비해나왔는데 어미 냥이가 개눈 감추듯 모두 먹어 치워버렸다. 다음에 또 가져다줘야지.
엄마가 오고 다들 신명을 되찾았다. 나는 졸지에 다시 길바닥에서 집사 신세로 전락하였다. 다들 신나게 노니는 모습 뒤로한 체 다시 길을 나선다. 부디 지난번 아기 냥이들처럼 쉽게 죽지 않았기를, 추운 겨울 잘 보내고 무럭무럭 자라났기를 바란다. 안녕.
#고양이
#이집트
#일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