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란 게 만개했을 때는 만개했을때 대로 멋있고, 질 때는 질 때대로 다 멋이 있는 건데 우리 이연희씨는 언제를 제일 좋아하세요?"
"꽃이 흩날릴 때 느므느므 아름답습니다.
이거는 눈이 온다 해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을 건데예.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거는... 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예."
4월의 첫날, 아침 라디오를 들으며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아름답게 꽃이 흩날리는 남쪽의 풍경이 그려진다.
기나긴 겨울과 여름 사이 짧은 봄, 꽃이 폈다 지는 길어야 일주일인 그 시간에 우리가 할 일은 꽃 보러 가자고 누군가를 꼬시는 일인지도 몰라. 아침 라디오의 진해 시민은 나를 꼬셨고, 나는 슬기를 꼬셨다.
라디오에서 '이거는 눈이 온다 해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을건데예.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예.' 그랬다고, 진해에 가자고.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지만 올해는 왠지 그렇게 사람들이 몰려가는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침 7시에 출발한 버스는 장복터널을 지나 11시, 진해 경화역에 도착했다.
기찻길 옆으로 늘어선 커다란 벚나무들은 실제로 느므느므 아름다웠지만, 사람들도 느므 많았다. 아름다운 벚꽃을 눈에 담고 역을 빠져나와 역 뒤편 마을로 나있는, 왠지 걷고 싶은 길로 들어섰다. 마을길을 산책하다가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 뒤를 쫓아보니 멀지 않은 곳에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있는 장복산으로 향하는 등산로가 이어졌다. 조금 올라 뒤를 돌아보았다. 역에서는 보이지 않던 진해항에 정박해 있는 크고 작은 배들이 멀리 보인다.
진해라는 도시는 반짝반짝하는 바다와 산에 핀, 반짝반짝하는 벚꽃 사이에 안겨있는 곳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남쪽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을까.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저기 볕이 잘 드는 빌라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저쪽 운동장에서 재잘거리는 아이들은 진해를 어떤 모습으로 기억할까.
벤치에 앉아 바다와 벚꽃을 한참 바라보았다.
좋은 그림과 이야기를 찾는 것이 우리의 일이라면 이건 땡땡이나 휴가보다는 출장이라고 해도 좋지 않을까.
햇볕을 쬐고 버스를 타기까지 시간이 남아 중앙시장에 들르기로 했다.
신문을 읽고 있는 과일장수 할아버지, 금귤 나무, 열대과일 같은 제철의 멍게, 대파와 부추를 구경하고, 멍게와 바지락, 돌김이 담긴 검은 봉지를 들고 버스가 기다리는 주차장으로 향했다.
임시주차장 뒤편에는 폐쇄된 군사시설이 나이가 많은 벚나무, 독일가문비나무에 둘러싸여 서 있었다.
건물과 나무들은 그곳에 아주 오래 전부터 같이 있었을 것이다.
'우린 꼬맹이구나.'
다시 4시간의 서울행 버스.
'원래 밤이란 건 이렇게 어두운 거지.'
까만 밤의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잠은 오지 않고 소곤소곤.
까만 버스가 덜컹거릴 때마다 슬기의 까만 봉지 안에서 바지락 껍데기가 달그락달그락 소리를 냈다.
이랬지만 우리는 다음날 '완전히' 뻗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