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寧邊)에 약산(藥山)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 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시인 김소월의 <진달래꽃>, 우리의 현대시 중 가장 가장 아름다운 시입니다. 여기에는 복잡한 상징이나 비유의 기교가 없습니다. 일상의 평이한 언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분량도 짧습니다. 12행이라 암기도 쉽습니다. 요즘에 그럴 기회가 있겠냐마는, 암송시를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면 반드시 등장할 시일 겁니다.
김소월은 한국근대문학사에서 가장 많이 연구된 시인에 속합니다. 소월의 생애를 보면 어떻게 이런 시들을 썼을까 경이롭기만 합니다. 1902년생인 소월이 받았을 모국어 교육이나 문학 교육은 지극히 제한적이었을 테니까요. 그래서 <진달래꽃>을 비롯한 그의 시편들은 '천품'의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의 신'과의 접신으로만 가능했을 일인 듯합니다. 기적과도 같은 시 <진달래꽃>, 당연히 관련된 문학적 논의는 엄청납니다. 이 시에 대한 나의 언급도 아마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추측을 해 봅니다.
나는 왜 이 시를 다시 떠올리고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생각했습니다. 얼마 전 비극적 사랑을 다룬 작품들을 연속해 읽었습니다. 그들의 격정에 깊이 공감해 사랑에 빠진 연인들을 위한 메모 수준의 글을 끄적인 적이 있었습니다. 그 글을 다시 꺼내 정리를 하다 보니 소월의 슬픈 연가 <진달래꽃>이 떠올랐습니다.
화자는 사랑에 빠졌습니다. 격정을 가눌 수 없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축복의 시간이 시작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사랑하는 연인과 길을 걸으면 온세계가 자신들을 맞이하고, 그/그녀의 체취는 천상의 향기로 서로에게 다가갑니다. 옷깃에는 광채가 돕니다. 여신의 질투라도 받으면 어떡하나 할 정도의 공연한 근심이 듭니다. 그들은 핏빛으로 물드는 들녘을 바라보며 어둠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찬란한 아침이 올 때까지 그들은 조용히 서로의 호흡을 느낍니다.
그런데 순간, 이 사랑이 사라지면 어떡하나 막연한 불안이 무의식의 언저리에서 스멀거림을 포착합니다. 그것은 점점 의식의 영역으로 밀고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파탄을 예감케 하는 징조는 없었습니다. 그저 막연한 불안감! 너무나도 완전한 사랑이 이 불안을 촉발한 것입니다. 그것을 감지한 화자는 절망합니다. 너무나 끔찍하지만 언젠가 닥칠 이별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통스러운 언어가 펼쳐집니다.
'역겨워'.
무심히 지나쳤던 이 단어가 충격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역겹다니!
결코 깊고 깊은 연심 가득한 이의 표현이라고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별을 감내하겠다는 전제로는 지나치게 과격하지 않습니까? 물론 소월이 1백여 년 전의 모국어 사용자이고, 또 일본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걸 감안해도 과도한 표현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을 듯합니다. 시어의 부적절함을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역겨워'는 아마 소월만이 쓸 수 있는 시어였을 겁니다. 그래서 놀랍습니다.
화자는 '나'를 보는 게 '역겨워'지는 것을 이별의 원인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역겹다'는 '싫다'를 유의어로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매스껍다', '거북하다', '고약하다'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독자도 '역겨워'를 단지 '싫다'의 의미로만 받아들이지 않을 겁니다. '역겨워'는 결국 '전면적인 부정'입니다. 그토록 간절하고 아름다운 사랑이 식어 '나'를 보는 게 '역겨워'진다면, 당신과 보는 세상은 더 이상 아름답지 않으며 어떤 빛도 비치지 않은 채 흑화(黑化)들로만 가득할 것인, 그래서 '나'를 보면 매스꺼워지고 구토까지 촉발한다면 내 당신을 어떻게 붙들 수 있겠는가 절절한 언어들을 쏟아놓고 있습니다. 그때 '나'는 어떤 원망도 없이 당신을 보내겠다며 격정을 억누른 채 꺽꺽 울음을 삼키고 있습니다.
<진달래꽃>의 에필로그
인간의 운명이란 예측 불가능한 것!
그저 그 운명이 거대한 파도처럼 닥쳐올 때 운명의 향방을 감지하고 순응해야 하는 법!
광대한 우주 속에서 영원한 존재가 없듯이, 불변의 사랑이 어디 있을 수 있겠는가!
영원히 우리 함께 호흡하며 태양의 뜨고 짐을 함께 맞이하리라던 굳은 맹세도 한갓 티끌 되어 흩날리리!
그 결별도 어차피 운명이라면 어찌할 도리가 없으리라!
운명과 맞서서 이겨내는 이는 인간의 몸을 지닌 이가 아니기에, 그대와의 결별에 일말의 부정함도 없으려면 극한의 순수 상태에 이르러야 하리!
그대 나를 떠남에 축복을 보내는 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그 운명에 복속하리라!
그대 나를 떠난 후, 아주 긴 시간이 흘러 그대 나를 잊을 때쯤, 나는 나의 운명이 마련한 길로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