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고 싶지 않은 마음

by 오월

연재 중인 브런치 글에는 나름의 순서와 주제를 정해두지만,

때로는 내가 겪는 일들이 그 순서를 밀어내곤 한다.

오늘의 이야기도 그렇다.

어쩌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이야기다.




아무 생각 없이 인스타툰을 보다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가벼운 그림과 귀여운 캐릭터, 중간중간 익살스러운 속마음까지—

그래서 나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지만, 금세 그 무게가 달라졌다.


@saebal_crow 작가님의 최신 툰, 〈받고 싶지 않은 빼빼로〉 의 내용 때문이었다.


학창 시절 겪었던, 모르는 아이의 고백과 거절, 그리고 스토킹.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

‘골키퍼 있다고 골 안 들어가는 거 아니잖아.’


지금이라면 문제적 발언으로 인식되겠지만,

십여 년 전만 해도 흔하게 오가던 말이었다.

거절을 거절로 받아들이지 못하던 시대.

받아줄 때까지 들이대라는 말이 당연하게 여겨지던 시절이었다.



중학교 시절, 친했던 친구들과 다투어 혼자 지낸 적이 있었다.

주변에 사람이 없었던 적이 거의 없었던 나는 그 고립감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티 내지는 못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의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띠링—

모르는 번호로 문자가 도착했다.


구체적인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자신에 대한 정보 하나 없이 ‘나를 좋아한다’는 말만 있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원하긴 했지만, 이런 방식은 원치 않았다.


처음엔 그냥 장난이라고 넘겼다.

낮아질 대로 낮아진 자존감에

‘설마 누가 나를 좋아하겠어’ 하는 생각도 컸다.


하지만 한두 번 오던 문자는 매일 다섯, 여섯 건으로 늘었고

차단하면 또 다른 번호로, 또 새로운 번호로 연락이 이어졌다.


나조차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던 시절이었는데

문자 속 상대는 나를 너무 잘 아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때 처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구역감이 올라왔다.


차단했다는 사실도 대수롭지 않은 듯

매일 아침 좋아한다는 내용의 문자를 보내왔다.

‘좋아한다’는 말이 내게는 상처로 다가왔다.


그 지독한 스토킹성 연락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졌다. 내가 무슨 대처를 한 것도 아니었다.

학창 시절의 가벼운 마음이 금방 식어버린 걸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몇 달 동안 나를 불안하게 했고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아직까지도 누가 그랬는지 모른다.




어릴 적엔 스토킹 피해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예쁘고 잘났으면…’ 같은 말들을 했다.

엄연한 2차 가해였다.

당시의 우리는 무지했고, 피해자의 고통은 생각하지 못했다.


가해자 입장에서는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한 게 뭐가 문제냐’고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거절한 사람에게 계속 마음을 들이밀었다면,

그건 더 이상 사랑이 아니다.

좋아하는 상대를 위해 포기할 줄 아는 마음,

그게 필요했다.


스토킹은 ‘좋아하니까’ 할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앞세운 폭력일 뿐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담담하게 꺼내놓는다.

잊고 지내다가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 오래 전의 불쾌한 기억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가해자에게는 어린 시절의 로맨스 소설이었을지 몰라도 피해자에게는 잊기 어려운 공포 소설의 한 장면이었다.


성별에 관계없이,

누군가에게 마음을 강요하는 순간 그것은 폭력이다.

‘사랑’이라는 단어로 잘 포장되어 있을 뿐

실상은 다르다.


누군가에게 고이 보내는 마음이

혹시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좋아하는 마음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상대의 거절은 더 깊이 존중받아야 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폭력 앞에서

누군가의 하루가 다시는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며,

이 이야기를 조심스레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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