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건강을 생각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

어른들의 건강 염려는 잔소리가 아닌 현실이었다.

by 오월

색에는 떠오르는 고유의 이미지가 있다.

초록은 싱그러움, 건강한 것들의 이미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지금은 나를 둘러싼 대부분의 것들은 초록이지만 어릴 적엔 초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주변에서 비라본 초록은 암울했다.

집에서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공원이 있다.

봄이면 그나마 핑크빛으로 물들어 기분을 좋게 했지만, 그 외의 계절엔 칙칙한 녹음만이 무성했다.

나무가 많아 산책로에는 볕이 잘 들지 않았고 이끼가 이곳저곳 끼어있었다.

밥상에는 초록 채소만이 가득했다. 고기는 딱히 구경해 보지 못한 식탁에 아쉬움을 느낄만한 투정도 사치였다.

어린 시절의 내게 초록은, 그저 나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비추는 색에 지나지 않았다.


입에 좋은 게 몸에 나쁜 것이라 했던가.

성인이 되고 나서 온갖 몸에 나쁜 것을 섭취했다.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인스턴트 위주의 식사를 했고 정작 식사는 하루 한 끼에 새벽 야식을 먹으며 살아왔다.

원래도 위장기관이 좋지 않았던 나는 잘못된 식습관까지 결합하여 현재 수많은 진료과를 섭렵하는 몸뚱이가 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원인을 알 수가 없어요. 이렇게 오래갈 리가 없는데.. “

결국 나의 병명은 원인 모를 위장장애가 되었다.

멀쩡히 있다가도 갑작스레 토기가 치밀어 올랐다. 병원을 이곳저곳 떠돌아다녀도 결국 원인은 알 수 없었다.

병을 앓고 있는 다른 환자들이 듣는다면 배 부른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원인을 알 수 없이 아프기만 한 것은 마치 ‘넌 아프면 약 먹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어 ‘라고 판정받은 기분이었다.

차라리 병명이라도 있다면 치료라도 할 텐데

원인을 알 수 없다는 것은 그저 나를 옥죄는 족쇄에 지나지 않았다.


불규칙한 식사 습관으로 위장은 음식물이 들어와도 움직임이 없었다. 축 쳐진 위장이 마치 주인을 닮았다.

예전엔 ‘먹고 죽자!’ 라며 건강보다 순간의 즐거움을 생각했던 과거의 나를 세게 한 대 쥐어박고 싶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질머리를 가지고 몸에 좋지 않은 음식들을 욱여넣었다가 단단히 탈이 났다.


문득 주변에서 비혼을 외치고 살아가는 지인, 자취생들을 보며 부러운 한편 혼자 살아가게 될 내 모습이 그려졌다.

깜깜했다.

내가 아프면 누가 나를 병원에 끌고 가 주려나? 내 한 몸 건사해서 무거운 발걸음 이끌고 병원에 갈 기력은 되려나?

어느덧 독립을 진지하게 고민할 나이가 되니 지금의 건강상태가 심히 걱정되었다.


약으로 고쳐지지 않는 이 몸뚱이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 치는 것인지,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록 채소가 눈에 들어왔다.

햄버거에 곁들여진 양상추도 빼내던 내가 양상추 가득한 샌드위치를 다 먹었다.

고기를 먹을 때 고기만 먹던 내가 쌈을 싸 먹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커피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운동이라고는 숨쉬기 운동, 출퇴근용 뜀박질이 전부였던 내가 적은 횟수지만 꾸준히 요가를 다니며 식후 산책을 다녀오기 시작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보겠다고

이 비루한 몸뚱이가 아등바등 움직였다.


나의 주변의 것들을 점차 초록으로 물들이고 있다.

조금이라도 건강을 생각하고 몸이 부담스럽지 않을 녀석들을 먹기 시작했다.

가끔은 입 안이 얼얼한 마라탕이 땡기는 날도 있지만 양심껏 채소류를 더 담아 넣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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