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약국과 동네약국

차이라면 차이랄까?

by 오월

우선, 이 글을 작성하긴 전.

대형약국 7년 반, 동네 약국 6개월의 편파적인 근무 기간의 차이가 있음을 안내드립니다.



대학병원 정문 앞에 위치한 대형 약국에서 7년 반이란 긴 세월을 근무했다.

첫 입사 당시 갓 스무 살이었고, 중간에 퇴사를 하고 또다시 붙잡혀오기를 반복. 어쩌다 보니 긴 시간을 근무했음에도 첫인상이 오래도록 남아있어 기존 근무하시던 분들에게 나는 '만년 신입'과 같은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내가 다양한 약국에서 근무한 것이 아니라 이것이 정답이에요! 할 수는 없지만 아마 대체적으로 비슷할 것 같긴 하다.



1. 보유 약 가짓수

처음 약국에 입사했을 때 공부하던 시절, 헷갈리던 부분 중 하나였다. 분명 처방전에 기재된 약 이름은 같은데, 용량이 천차만별이었다. 나는 거의 보조인력과도 같은 느낌으로 접수대가 밀리면 접수대 업무를, 조제실이 밀리면 조제실 보조업무를 왔다 갔다 하며 도왔다.

접수대의 업무는 밀물과 썰물과도 같았다. 손님들이 몰려서 방문하면 정신없이 바빴다가 접수가 완료되면 약간의 여유 시간이 생긴다. 그래서 중간중간 손님들의 민원을 처리하기도, 뒤에 진열된 약장을 정리하기도, 금세 빠져나가는 피로회복제 세트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조제실은 손님이 얼마나 오든 갑자기 정신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시종일관 정신이 없다.

기계에서 약이 나오는 속도는 정해져 있고, 약포지에 약이 알맞게 들어가는지 빠르면서도 정확하게 훑어야 했다. 게다가 앞에서는 밀려들어오는 처방전에 맞춰 계속 챙겨야 하는 약을 외쳤고, 하던 일을 잠시 멈춰두고 그 틈에 후다닥 챙겨드려야 했다. 나는 사무업무에 특화된 사람이었고 조제실에서는 신입과도 다름없어 업무처리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던 큰 이유 중 하나는, 수많은 약 종류에 압도되었기 때문이다.

동일한 약 이름이라도 서로 다른 용량으로 8가지 이상 있었고, 각각의 약 위치도 상이했다. 중간에 사용하던 약이 바뀌면 기존 약 틈에 신약을 정리할 공간을 만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안타깝게도 내가 공간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인간이라 약 이름을 듣고 단번에 위치를 찾을 수 없어 더욱 힘들었다.

하지만 동네약국은 이런 부분에 있어 조금은 더 자유로웠다. 동네약국은 주변 병원 업종에 따라 약을 들여오기 때문에 대학병원에 비해 보유 약 가짓수가 많지는 않다. 용량도 대학병원에 비해 간소했고. 내가 근무했던 동네 약국은 소아과와 산부인과 처방을 주로 받기 때문에 챙겨야 하는 약이 그다지 많지 않았고 위치를 찾는 것도 대학병원 약국에 비해 수월했다.


2. TV 선전하는 약품, 대형 약국에 무조건 있을까?

이건 정말 대표 약사님의 영업 스타일에 따라 크게 나뉘는 것 같다. 우선 나는 대형약국 근무 당시, 2명의 대표를 겪었다. 업무 스타일은 정 반대셨지만 취급 품목은 유사하니 그냥 적어보겠다.


대형 약국엔 생각보다 많은 영양제를 취급하지 않고 있다. 근무하던 약국에 이미 비타민 업체가 들어와 있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었지만 애초에 대학 병원은 처방받은 약품 외의 다른 약품을 구매하는 일이 많지 않다. 병원에서 소모품을 지급해 주는 경우도 있고, 당뇨 소모성 비품을 취급하는 업체가 따로 있기도 하여 다른 소비로 이어지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론이지만, 워낙 비싼 약값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싶다. 다양한 약을 복용하면 영양제 복용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원장님과 상의를 해야 하니까.

하지만 동네약국은 정말 약사님의 영업 방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소아과 약국이라 아이들을 위한 간식, 비타민 장난감 등. 성인인 내가 보기에도 정말 다양한 장난감에 눈이 돌아갔다. 어릴 적 약국에 방문하면 하나씩 주시던 쏠라씨 같은 영양제가 다양한 캐릭터로 포장되어 있으니, '고작 천 원인데 한번 구매해 봐?' 하는 생각이 자주 들었다. 나도 이런데 어린아이들은 오죽했을까.

아이들이 약국만 오면 떼를 써서 결국 처음 들였던 품목만 판매한 이후 장난감은 더는 들이지 않았다. 다만, 약사님이 영업에 욕심을 가지신 분이라 서울경기 쪽에서 주로 판매하는 비싼 약품을 들여왔다. 내가 근무했던 동네 약국은 부촌에 속했다. 소위 '사'자 직업군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학군 지라 고객들의 지갑도 상품만 좋다면 잘 열리는 편이었다. 약사님의 완벽한 약 조합으로 판매한 비싼 영양제는 우리 약국의 효자상품이나 다름없었다.

+tmi) 자주 방문하는 동네 약국이 있다면 약사님께 슬~쩍, 부탁을 드려보자!

가끔 약사님께서 주문을 넣어주시는 경우도 있다. 약사님의 호의이니 무리한 요구는 곤란합니다..!


3. 손님 = 환자

접수대 근무를 하면서 힘든 부분 중 하나는 손님을 응대하는 일이다. 이것은 대형병원이나 동네 소형병원이나 동일한 부분이다. 손님은 환자이다.

대학병원 약국을 다니시는 분들은 경증도 있지만, 중증 환자분들도 계신다. 바구니에 차곡차곡 정리된 약을 보면 혀가 절로 나온다. 약 먹고 배부르겠는데..? 2층에서 시럽 약 한 박스를 나를 때 어깨와 허리가 빠질 듯이 아프다. 손님도 자신의 약 박스를 보며 한숨을 푹푹 내쉰다. 그 한숨은 조용히 흘러가기도, 간혹 신세한탄으로 무겁게 내려앉기도 한다. 대학병원의 약들을 보다가 동네약국에서 나오는 약을 보면 솔직히 귀엽다. 대학병원처럼 6개월, 1년의 처방약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약 가짓수도 그리 많지 않다. 대학병원에 비해 일반 병원을 다니시는 분들의 약은 괜히 경미한 병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대형병원을 방문하든 일반 병원을 방문하든 내가 맞이하는 분들이 환자라는 점이다. 병에는 경증과 중증이 있겠다만, 그들이 겪는 고통에는 내가 함부로 무게를 잴 수 없다.

간혹 상상을 초월하는 진상 손님을 마주할 때도 있다. 사회초년생의 나는 손님의 민원을 단순히 짜증으로만 여겼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건데 도대체 왜 저럴까? 나는 저렇게 나이 들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시간이 흐를수록, 내 몸이 아플수록 환자의 마음을 아주 조금은 이해했다. 그렇다. 아프니까. 자신에게 남아있는 에너지가 얼마 없으니까, 아프니까 나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타인의 큰 고통보다 내 손가락에 박힌 가시가 더 아픈 법이랬다.



약국의 근무경험은 나를 한껏 예민하게도, 너른 마음을 만들기도 했다.

생과 사의 어딘가, 나는 그 관문의 문지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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