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실수령 백만 원 대
타인의 생각을 나와 비교하여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속이 좋아서 내 의견을 무시하는 반대의견을 보고도 하하 호호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_ 하는 생각의 확장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아한다. 가령 내가 가볍게 지나쳤던 내용에 대한 심도 있는 견해를 통해 해당 장면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어 좋다.
자극적인 내용도 좋아한다. 물론 피로감은 느껴지지만 별별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임을 느낀다. 하지만 자극적인 것도 어쩌다 한 두 번이지, 매일같이 자극 속에서 살아가기란 쉽지 않다.
어느 순간 내가 마주하는 글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서로를 비난하는 내용뿐이었다.
기성세대와 MZ세대의 갈등, 남녀 젠더갈등, 정치사상으로 인한 갈등,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우리는 서로를 적대시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른들의 갈등 주제가 간혹 어린아이들에게 물들여진 것을 볼 때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병들어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백충, 삼백충. 수년 전 인터넷 뉴스에 충격적인 신조어가 소개되었다.
월 급여가 2백만 원, 3백만 원인 소득자들을 가리켜 비하하는 단어였다. 인스타에는 월 천만 원을 누구나 벌 수 있는 것처럼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명품매장에서 쇼핑하는 사진들, 하루 숙박비만 수십만 원 하는 호텔에서의 즐기는 호캉스, 비싼 오마카세.
우리가 인터넷을 삶에 녹여내어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현실과 이상의 차이는 어마무시하게 변해있었다.
19살, 첫 직장을 다니던 시기는 최저시급이 5천 원대였다.
그 당시의 나는 월급으로 세후 130만 원 언저리를 받으며 근무했다. 물론 소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그 소득으로도 3인 식구가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소액이지만 적금을 들어놓기도 하고 엄마의 근로소득까지 합해서 생활하는데 약간의 부족함은 있었을지언정 살기 막막할 정도는 아니었다.
최저임금이 9천 원대였던 작년에도 세후 200만 원을 넘기지는 못했다. 심지어 코로나 이후 근로소득자는 집안에서 나뿐이었다. 펑펑 돈을 쓰고 살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먹고 싶은 것 한 번씩 먹고, 사고 싶은 것 사는데 크게 문제 되지는 않았다. 물론 이것은 나의 소비가 고가의 명품을 사용하지 않았기에 그랬을 것이다.
작성하고 보니 민망하지만, 그렇다. 나는 요즘 인터넷에서 말하는 이백충이었다.
쥐꼬리만 한 소득에서 떼어가는 세금만 몇십만 원이라니. 참 아이러니하다. 인터넷만 살펴보면 다들 잘 먹고 잘 사는 것 같다. 나만 이렇게 사나, 싶은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졸업 후 만나지 않았던 친구들의 삶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당시에는 나와 비슷했던 친구가 사업을 한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생일선물로 받은 명품을 자랑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한다. 이제 갓 시작한 것인지 골프에 빠진 게시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나는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해외여행 게시글이 자주 올라온다. 세상을 빠르게 흘러가는데, 나만 열아홉 살 때 그 자리에 멈춰서 있는 것만 같다.
실제적으로 만나는 주변 지인들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인터넷만 보면 나는 밥벌이도 못하는 수준 이하의 인간일 뿐이다.
대학을 나왔더라면 뭔가 조금은 달라졌을까? 지금의 생각은 '알 수 없음'이다. 대학을 나왔더라면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최근 경기 상황을 봐서는 그마저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 왜 대졸자가 이 쪼그만 회사에 왜 지원하는 거야?!'
예전 백수 생활을 하고 있을 당시 약국 말고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하고 싶어 사이트를 살펴보았다. 고졸이 지원하기엔 높디 높은 학력의 벽. 가끔 학력무관인 회사 구인글을 보고 들어가면 초대졸, 4년제 졸업생들의 지원 비율이 꽤 높아 짜증을 냈다. 대졸자들이 뭣하러 학력무관한 곳에 하향 지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뿐더러 나의 일자리를 빼앗아가는 것만 같아서 마음이 울컥했다. 나같아도 고졸보다는 대학 졸업자를 선호할 것 같아서. 하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그만큼 일자리가 없다는 말이었을 텐데.
고졸자도 대졸자도, 청년도 노년층도, 모두가 살아내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이제는 서로를 향한 혐오를 멈추어도 괜찮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