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사 전문직, 유니폼이 생겼다

약국 유니폼이 왜 있었을까, 잘 생각했어야 했는데..

by 오월

졸업 후 내가 취업할 수 있는 곳은 정해져 있었고, 누군가의 도움없이 홀로 공채에 도전할 에너지는 더욱이 없었다.

가뜩이나 고졸이라는 타이틀에 무력감을 느꼈고 눈을 뜨자마자 들려오는 엄마의 '언제 다시 일 할거니?'라는 잔소리를 모른 척 무시하기도 힘든 그런 날.


엄마의 잔소리가 유독 심했던 날이었다.

모처럼 출근할 때와 다름없이 일찍 눈을 뜬 그 날, 엄마는 내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부터 언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볼 것이냐며 짜증섞인 잔소리로 나를 대했다.

평소라면 짜증은 났지만 모른 척 귀를 막아버렸을텐데, 이상하게도 그 날은 화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엄마의 잔소리에 머리가 터져버릴 것만 같아

'이놈의 집구석...!' 하며 엄마의 잔소리를 에너지 삼아 구인구직 플랫폼을 뒤졌다.


페이지 한참을 넘어가자 약국 구인글이 보였다.

매번 보던 콜센터, 카드사, 학습지가 아닌 새로운 구인글. 다만 걸렸던 것은 올라온 지 꽤 된 구인글이었다는 점이다.

직원을 구했어도 구인글을 내리지 않는 경우도 있어 연락하기가 망설여졌다.

"너 도대체 언제까지 일도 안하고 뒹굴거릴래?!"

엄마의 잔소리가 나의 전투력을 상승시켰다. 시간은 하필 오전 7시를 넘긴 이른 시간이었고, 심지어 근무도 하지 않는 공휴일이었다.


'안녕하세요, 이른 시간이라 문자로 대신 남깁니다. 구인글 보고 연락 드렸는데 혹시 사람 구하셨을까요?'

문자 보내는 손이 덜덜 떨렸다.

전송 버튼을 누르고 모른척 휴대폰에서 시선을 떼자 얼마 지나지 않아 답장이 도착했다.

'아니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되실까요?'

아, 나이...! 괜히 스무살이라 보내는 손이 떨렸다.

어린 나이라 일을 대충할 것 같다며 거절하면 어떻게 하지? 괜한 불안감을 안고 답장을 보냈다.

'괜찮으시면 오늘 10시에 면접 가능하실까요?'

예상치 못했던 답장에 냉큼 가능하다는 연락을 보내고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기간이 꽤 되었음에도 사람이 구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의아하기도, 공휴일임에도 불구하고 면접을 본다는 게 어지간히 급하구나~ 생각은 했지만 약국이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어? 하고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병원 바로 앞, 정문에 위치한 약국.

학교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의 힘으로 취업을 준비하는 과정이 낯설고도 어색했다. 두려운 마음도 있었다.

그 두려움이 원인이 무엇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거절에 대한 두려움일지, 새로운 직무에 대한 두려움일지, 합격하지도 않았지만 함께 일하게 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일지.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할 수는 없지만 나는 두려운 마음을 안고 면접 장소로 향했다.


"콜센터에서 6개월이나 근무했어요?"

나이 때문에 거절당할까 두려웠던 마음은 약사님과 면접을 진행할 수록 줄어들었다.

약사님의 질문과 표정을 보아하니, 아_ 합격이다. 이 생각이 머릿속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 콜센터 6개월 경력도 꽤나 높게 쳐주었다. 약국 업무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약국도 쉬운 줄 아는데 마냥 쉽지만은 않은데.. 콜센터 다녀봤으니 괜찮을거예요"

금요일에 진행했던 면접. 약사님은 당장 월요일부터 출근이 가능하냐 물었다. 내가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던가?

가능하다 말씀드리고 혹시나 규정 복장이 있는지 여쭤보니 유니폼이 따로 있어서 출근복은 자율이고 업무용으로 검은색 바지를 입는다고 말씀해주셨다.


유니폼..!

개인적으로 유니폼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아마 유니폼에 대한 로망도 나의 열등감에서 기인했는지도 모른다.

보통 유니폼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입는 복장이니까.

아직 입어보지도 않은 유니폼에 괜히 설렜다. 업무에 대한 두려움, 새로운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우선 접어두고 그저 유니폼에 들떠버렸다.


전문직은 아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유사 전문직종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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