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합니다, 고객님~" 이 질려서

사랑은 무슨, 얼어 죽을;;

by 오월

2013년. 나의 고3 시절은 눈물범벅이었다.

일반 고등학교의 아이들이 수능을 준비하며 눈물을 흘릴 때, 나는 '안타깝지만'으로 시작하는 쓰디쓴 합불 결과를 수도 없이 받아들여야만 했다.


당시 경제가 좋지 않다...라는 이야기가 떠돌며 취업처가 마땅히 들어오지 않는다는 소문은 아이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불안 요소가 되었다. 애초에 좋은 취업처로 가기 위해 살아온 아이들에게 좋은 취업처가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상당히 불안할 수 있는 소문이 아니던가.

물론 경기가 좋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매번 안 좋다고 하잖아) 윗 선배들에 비해 금융권이든, 공기업이든 모집공고가 게시되지 않았다.

어쩌다 금융권 모집 공고가 한 군데 들어오면 나는 나보다 성적이 월등히 좋은 아이들과 경쟁선에 서게 되었다. 한 학기 내내 정규수업은 듣지도 못하고 자소서 첨삭하는데 몇 날 며칠을 할애하고, 면접 준비를 하고.

운 좋게 한 대기업 공채에 서류합격했지만 결국 최종 불합격 통보를 받게 되었다. 나의 온 여름방학을 투자했던 곳이었는데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반복된 불합격으로 가뜩이나 자존감이 낮은 나는, 더 땅굴을 파고 들어갔다.

수업을 듣지 않았던 내가 좋은 성적을 받을 리 만무했다. 난생처음 보는 낮은 등급을 받았고 반복된 불안감에 나는 친구와 함께 콜센터에 지원하게 되었다.


사회생활을 해본 적 없던 과거 나의 오만한 소리지만, 콜센터에 떨어질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실상 성적은 상관없이 지원할 수 있는 곳이었고 3D 직종으로 유명한 직업군이었으니까.

가슴을 후벼 파던 불합격 통보가 꼴도 보기 싫어서, 하나 둘 취업처로 나가는 친구들 틈에서 나 혼자만 남을까 봐 두려웠던 나는 담임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콜센터로 도망쳐버렸다.


담임 선생님은 평소 다른 반에서도 내 자랑을 자주 하실 정도로 나를 예뻐하셨는데, 내가 콜센터로 가겠다고 말씀드린 이후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해 버렸다. (콜센터를 비하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알아달라..!!)

그리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 했던가.


"사랑합니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영혼 없이 내뱉는 인사말. 전화상 사람들의 발음은 무슨 말인지 알아먹지도 못하겠고. 고객들의 요구 사항이 무엇인지 빠르게 캐치하지 못했다. 틈만 나면 새로운 정책과 상품이 쏟아져 나왔고 심지어 나는 사내왕따를 겪어야만 했다. 사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내 왕따라기보다, 나와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이라 서로가 서로를 불편히 여겼던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는 행위 자체가 고통이었다. 출근길은 언제나 울적했으며 숨이 턱턱 막혀왔다.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가 보였고, 고객들의 민원을 나를 옥죄었다. 성희롱 전화를 받으면서도 고객보다 먼저 전화를 끊을 수 없다는 정책으로 감내해야 했던 상황, 무지성으로 XX 년, 씨 X 과 같은 욕설을 참아냈다. 내가 처리할 수 없었던 고객의 민원이지만 꼴에 민원이라고, 나를 민원인 앞에 앉혀두고 사과를 시키고 시말서 작성을 시켰다.

회사는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회사는 학교와 다르다. 사실상 나의 잘못도 아닌 일에 나는 욕받이가 되었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나' 그 자체였다. 도저히 콜센터 업무는 나와 맞지 않았다. 기본 콜 수도 채우지 못해 비교당하고 스스로 자책하는 내가 너무나 싫었다.


4월에서 5월로 향하던 따스한 봄날.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나를 지키고자 첫 퇴사를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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