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초사회 살아남기

비하할 의도는 없는데요, 그냥 그렇더라고요.

by 오월

am 7:00 기상

am 8:05 헐레벌떡 버스 탑승

am 8:20 약국까지 전력질주

am 8:25 유니폼 갈아입기

am 8:30 비닐 2~3묶음 챙겨서 내려오기


나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면접을 공휴일에 진행했기에 입사일 처음으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을 처음으로 만나 뵙게 되었다. 내가 병원 들렀다 방문하는 약국을 생각하면 약사님 1명, 계산대 직원 1명의 소형 약국이 익숙했지만 첫 출근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약사님만 5명, 나를 제외한 접수대 직원 4명, 조제실 약제보조 직원 5명, 게다가 약국에 비타민 코너 2명, 청소 이모님까지...!

그동안 가봤던 약국과는 차원이 다른 근로자 수였다.



처음 입사했을 당시, 3일 정도는 직접 업무를 수행하기보다는 혼자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존 보관 중이던 처방전을 보며 전산에 입력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외용제별로 어떻게 전산에 입력해야 하는지. 항상 보험이 적용되는 저렴한 감기약 같은 3일 치 약을 받던 나의 처방전과는 달리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싼 약품, 처방전 페이지가 2페이지가 훌쩍 넘어가는 약의 가짓수, 평균 3개월분의 약.

하루 평균 300~400건가량 접수된 처방전을 가지고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마감 타임이 되면 손님들에게 받은 현금을 잘 세고, 카드 단말기의 결제금액과 전산에 기록된 금액이 맞는지를 정산했다. 이제 갓 사회인이 된 어린아이가 두툼한 지폐 뭉치를 만져볼 일이 있다면 얼마나 있었을까. 지폐 뭉치를 셀 줄 모른다면서 핀잔을 듣고, 돈 세는 연습까지 했다. 단 돈 몇 백 원이라도 틀리는 날에는 퇴근이 없었다. 동전 하나라도 찾기 위해 수 십건, 수 백건에 달하는 카드 내역서를 출력해서 일일이 전산에 기록된 내용과 맞는지 비교해서 찾아내야 했고, 정신없는 하루를 찬찬히 되짚어서 누락되거나 추가 기록된 내역을 찾아냈다. 다들 퇴근을 앞에 두고 초인이 된 것만 같았다.


나는 사실상 회계를 제외한 업무 전부를 도맡아 일했다.

이제 갓 스무 살, 어리다는 이유와 신입이라는 명목하에 모든 잡일은 내가 해야만 했다. 무거운 짐을 나르는 일도, 약사님들이 요구하는 서류를 찾는 일도, cctv를 찾아내는 일도, 점심시간 반찬가게에서 배달온 도시락을 정리하는 일도. 잡일을 해야 한다는 부분에 있어서 큰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같이 일하는 동료분들 성격이 남에게 일을 떠넘기는 편도 아니었다.

물론 이것이 신입버프 한정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일을 누군가에게 떠넘기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힘들었던 이유는 약국의 생태계가 완벽한 '여초' 사회였기 때문이었다.


여초 란 무엇인가?

한 인구 집단 내에서 여성의 수가 남성의 수를 초과하는 상태로, 인구 성비 불균형 외에도 특정 업종이나 환경에서 여자 비율이 높은 현상을 말한다.


여성들 위주 근무지의 특징이라고 할 것 같으면, 속된 말로 정치질이라 할 수 있겠다. 표현이 다소 격양되어 불편함을 느낄 수 있을 테지만 이보다 더 피부로 와닿는 말 표현을 찾지 못했다.

"어디 학교 나왔어?"

"집이 어디야? 부모님은 뭐 하셔?"

처음에는 갓 스무 살 사회초년생의 긴장과 어색함을 풀어주기 위해 던지는 질문들 자체가 그저 좋았다. 질문의 내용에 답하기 불편함을 느낄만한 것들도 당시에는 내가 이 약국에서 살아남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 생각했다. 내가 대답을 함으로써 나와 저들 사이의 관계가 조금은 더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 콜센터 근무 당시에도 업무가 나와 맞지 않아 힘든 것 보다도, 팀 내에 적응하지 못하여 소속감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었다.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는 게 당시의 나에겐 중요했다. 업무는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겠지만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과의 관계가 더 중요한 타입이었다.


스무 살의 나는 관계를 위해 너무나 솔직했고, 서른 살의 나는 그 관계를 지키기 위해 솔직하지 못하게 되었다.

솔직함은 나를 공격하는 말이 되었고, 투명한 감정은 나를 쥐고 흔들 수 있는 타인의 무기가 되었다.

"검사를 해봤는데 딱히 이렇다 할 병명은 없어서 우선은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다만, 비장이 커져 있어서 관리는 해야 할 것 같아요"

"혹시 연구직에 있어요? 우선.. 갑상선 검사 한 번 진행해 봐야 할 것 같네요"

내 몸은 어느새 병으로 망가져 있었다.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하고 먹은 것 없이 게워내는 것이 일상이라 병원을 방문해도 이렇다 할 병명은 얻지 못했다. 결국 내가 얻은 것은 원인 불명의 위장장애였다.

2차 병원을 한 달 내 다니며 온갖 검사를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이유를 알 수 없다'는 내용뿐이었다. 차라리 병명이라도 있다면 무슨 치료를 받아야 할지라도 알 수 있을 텐데.


업무를 하면서 얻은 정신적 스트레스는 나의 육체를 병들게 했다. 약국 경력만 8년.

나는 살기 위해 3번째 퇴사를 외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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