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
백수가 되었다.
그것도 코로나 시국에.
소녀가장 아닌 소녀가장으로 살아온 나는 비로소 그 짐을 내려두었다. 대신, 더 큰 불안이라는 짐이 얹어졌다. 감히 이전 직장생활을 하면서 느껴본 적 없는 새로운 불안감이었다. 비록 최종학력은 고졸이지만, 나이가 깡패라고. 눈을 낮추면 얼마든 취업이 가능한 나이였다. 그런 요행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 사네, 죽네를 외치는 자영업자들과 인원감축을 행하는 회사들.
나보다 훨씬 좋은 스펙을 지닌 사회인들이 쫓겨났다. 고졸자인 나도, 명문대를 나온 누군가도. 똑같이 백수라는 옷을 입으니 달라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는 우리가 행하던 모든 생활양식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았다. 특히,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지금 생각해도 몸이 쑤신다. 모임의 기준 조건은 매일같이 달라졌고, 그로 인한 피해도 만만치 않았다.
출근할 땐 그렇게 백수의 삶을 살고 싶다, 사람 좀 안 만나고 싶다 생각했는데 막상 그러한 일이 실제로 발생하니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
봄을 지나 여름이 왔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활동들도 모두 온라인으로 대체되어 그야말로 밖에 나가지 않는 감금생활을 했다.
바깥바람을 쐬고 싶었고 혼자 카페에 방문해서 커피를 마시며 쉬고 싶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매장 지침이 계속 바뀌던 시점이라 매장 내 취식이 불가했다. 물론 테이크아웃은 할 수 있었지만 내게 필요한 것은 커피가 아니었다.
사람을 통한 활기가 필요했다. 사람이 싫다, 피곤하다 했지만 정작 사람을 만나지 않으니 우울감이 몰려왔다.
여름이 되니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 내 기분도 눅눅해졌다. 눅눅해진 공기에, 그냥 방이란 작은 공간에서 죽은 듯 잠만 청했다.
코로나 블루라는 유행어가 생겨났다.
코로나 사태가 점차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다 우울감과 무기력함에 잠식되었다.
우울과 무기력은 내게 자주 찾아오던 감기 같은 존재였다. 분명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나는 그 우울감을 해소하기 위해 꾸역꾸역 짐을 싸들고 가까운 도시로 떠났다. 나를 모르는 곳, 내가 이방인이 되는 곳에서 해방감을 느끼고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코로나 장기화로 인한 우울감은 몇 개월 동안이나 계속 지속되었다.
코로나 블루로 시작했던 것이 더 나아가 분노로 가득 찬 레드가 되었고, 이후 좌절과 절망. 앞이 보이지 않는 새까만 블랙이 되었다.
우울은 쓰나미처럼 나를, 아니 우리를 덮쳤다.
처음엔 사회적 거리두기로 만남을 줄이니 마음의 짐이 살짝 덜어졌다. 하지만 그 시기가 내 예상보다도 더 길어지자, 나는 혼자가 좋다고 했으면서도 모순적이게 사람이 보고 싶었다. 우리가 그동안 사람이 싫다 했던 이유는 과도한 영역침범 때문이 아니었을까?
모든 관계가 단절되고 나서야 소중함을 알았다. 늘 보던 얼굴이라 소중함을 느끼지 못했던 관계가, 의도적인 단절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달았다.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했던 건 단절이 아닌 적당한 오지랖이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