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뿐만이 아니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진 로망 중 하나라고 생각이 든다. 바로, 외국인과의 프리토킹.
하지만 언어에 대한 장벽은 여전히 높았고, 잘 모르는 영단어를 요리조리 조합해 내 입 밖으로 낸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작성하는 버킷리스트 안에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자 하는 의욕을 보였지만, 현실은 그저 감탄만 하며 나는 그 무엇 하나 행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갈 뿐이었다.
학생 때 나름 발음이 좋다고 칭찬은 들었던 것 같은데.
그럼 뭐 하나? 언어의 본래 목적인 '소통'이 안되는걸.
그저 타국의 언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것은 나에게 먼 일이라 여기며 살아가던 중 난감한 미션(?)이 도착했다.
조그마한 약국에 들어선 외국인 손님.
대형약국에서 근무할 적에는 약사님이 많이 계셔서 나와는 먼 세계의 일이라 여기며 손님 응대를 하지 않는 약사님께 안내하는 일을 했다. 영어를 단 한마디도 뻥긋하지 않았는데.
내 옆에는 아무도 없었다. 약사님과 조제실 담당근무 직원은 내부에서 다른 작업을 하고 있었고 오롯이 외국인 손님을 나 홀로 맞이해야만 했다.
하지만 '무지'에 대한 부끄러움은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나의 입은 외국어 한 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어서 오세요"를 외치고 있었다.
외국인 손님은 필요한 구비 물품들을 유창하게 말했다.
아, 물론 영어로 ^^
나의 걱정이 과도한 기우였다는 머쓱한 상황이길 바랐는데, 어림없다는 듯 영어로 샬라샬라 질문을 건네왔다.
그럼에도 나의 입술은 쉽사리 간단한 단어조차 내뱉지 못했다.
내가 한 것은 그저 외국인 손님이 말하는 문장 속에서 아는 단어, 눈짓, 몸짓을 통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뿐이었다.
타인이 보기엔 서로 기싸움을 하듯 자신의 언어로 대화를 이어가는 웃긴(?) 상황으로 보였을 것이다.
조제실 업무가 끝났는지, 나와 외국인 손님의 손짓 발짓 웃기게 대화를 이어가는 모습을 본 약사님과 동료 언니의 웃음이 빵 터지고야 말았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분명 추운 겨울날이었음에도 내 등줄기가 눅눅해졌다는 것을...
"아니, 서로 곧 죽어도 자기 언어로만 말해ㅋㅋㅋㅋㅋ"
"아이고 배야, 아이고...ㅋㅋㅋㅋ 다음에도 그 손님 오시면 가영씨가 받자"
따분한 직장 생활 속에서 발견한 소소한 이벤트는 그들의 활력이 되어 주었다. 여전히 눅눅한 나의 등짝은 모른 채...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손님은 방문했다.
나와 그 손님의 언어 실력이 조금이라도 상승했냐고? 전혀
우리는 여전히 각자의 언어로 대화를 이어나갈 뿐이었다. 엉망진창이고 비록 소통하는 데 시간은 걸렸지만 우리의 대화는 결국 끝을 찾아냈다.
마치 내 인생 같았다.
구불구불. 남들은 쉽게 가는 길을 나는 굳이 먼 길을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사약 길이란 걸 알면서도 내가 직접 경험하고 싶다는 꼿꼿한 성격 탓일 수도, 어린 시절부터 뼈에 새겨진 돈에 대한 좋지 않은 경험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어떤 모양이더라도 어떻게든 끝은 났다. 좋은 모양으로든, 좋지 않은 모양으로든.
언제나 끝날까 싶었던 지긋지긋했던 트라우마는 우스갯소리로 꺼낼 수 있을 정도로 희미해졌고, 이제 그 일은 더 이상 내게 상처로 자리하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던 말이 나를 힘들게 하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치료해 줄 독한 약은 분명했다.
여전히 나의 버킷리스트에는 언어에 대한 갈망이 담겨있다.
하지만 게으름과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하는 나태한 마음은 여전히 언어를 배우는 데 장애물이 된다. 그럼에도 이전처럼 두렵지만은 않다. 어떻게든 끝은 난다는 걸 알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