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다
원치 않는 퇴사를 하게 되어,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고용노동부 문의를 하며 정신없는 시기를 보냈다.
단체로 일자리를 잃어서 그런지 상담원 연결을 하기까지 내 앞에 수 백명의 대기자를 기다려야만 했다. 5분, 10분, 종료버튼을 누르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는 걸 알기에 꾹 참고 기다렸다.
한 30분 좀 넘게 기다렸을까? 상당히 지친 목소리의, 하지만 친절을 잃지 않은 이중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지칠 정도로 기다린 것처럼 상담사님도 수많은 민원 응대를 했겠지 싶어 과거의 나의 모습이 떠올라 동질감이 느껴졌다.
"이번 코로나로 경영 악화 되어서 잘리게 되는데 며칠까지 근무해야 실업급여 수령이 가능할까요?"
내 정보를 조회하더니 4월 중순까지는 근무해야 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약사님은 나에게 3월 말까지의 시간을 주었는데, 고작 며칠 차이로 실업급여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야 만 것이다.
눈앞이 새까매졌다.
분명 나의 잘못이 아닌데, 과거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이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곳에서 4대 보험을 가입했더라면 이런 일이 없지 않았을까? 거기서 1년 가까이 근무를 했었는데, 이미 지나가고 어쩔 수 없던 상황임에도 꼬리에 꼬리를 문 후회를 시작했다.
전화를 종료하고 차마 약사님 얼굴을 보고 당당히 따질 자신이 없어 문자를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찾아보니 '해고예고수당'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고용주에 30일 전에 예고 없이 해고한 경우 지급해야 하는 수당이라고 한다.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해고예고수당을 청구하게 되면 1개월분의 월급을 추가로 지급해야 한다. 사실상 너무 진흙탕 싸움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물론 약사님이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아니라는 막연한 확신이 있었다.
구구절절 나의 상황과 감정을 적어 내린 장문의 카톡을 약사님께 보냈다. 요지는, 근무하지 않고 1개월분 월급을 줄 바엔 며칠 더 근무하고 실업급여 수당을 받게 해 달라는 일종의 거래였다.
약사님은 나의 장문의 카톡에서 엄청난 걱정이 느껴졌다면서, 알겠다며 너무 고민하지 말고 다음날 보자는 카톡을 보내왔다.
나의 요구대로 나는 실업급여 최소일수를 맞춰 근무를 했다.
비로소 4월 중순, 나의 근무가 종료되었다.
고객님, 근무 일수가 부족해서
실업급여 신청이 어려우세요..
난생처음, 실업급여를 신청하기 위해 고용복지센터에 방문했다가 마주한 날벼락이었다.
분명 퇴사 전 상담사님을 통해 4월 중순까지 근무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는데, 또 2주가량의 기간이 부족하단다. 어디서 잘못된 것일까? 이미 양해를 구하고 4월 중순 퇴사처리를 했다. 더 이상 약사님께 양해를 구할 수도 없었다.
또다시 눈앞에 깜깜해졌다. 누구의 잘못인가? 나의 절망한 표정을 보고 직원분이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그래도 고객님, 나중에 실업급여 신청하시게 되면 그땐 장기근속이라 8개월까지 가능하실 거예요"
어떻게든 위로의 말을 보태기 위한 말이었음을 머리로는 알겠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났다. 당장 코로나로 취업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당장 먹고살기 막막한데 언젠가의 8개월 실업급여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엄마... 갑자기 또 2주 부족해서 실업급여 신청 안된대....."
어떻게, 길바닥에 나앉으란 건가?
결과적으로 나는 무사히 실업급여 7개월분을 수령할 수 있었다. 중간에서 자료 확인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주 5일 근무로 착각해서 처리하여 일수가 부족했다나 뭐라나?
코로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절망에 빠뜨렸다. 하지만 그 절망은 이제 시작이었을 뿐이다.
코로나 블루, 레드, 블랙... 수많은 신조어가 생겨났으며 사람들은 여러 이유로 우울 속을 헤엄쳤다. 그 우울에 벗어나기까지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