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전 체크해야 할 '배우자 조건 3가지'
기대하던 소개팅을 망쳤다. 대기업 다니는 사촌언니가 주선해 준 자리였다. 평소 나를 예뻐라 하던 언니는 육각형 배우자 조건에 부합할 만한 정말 괜찮은 조건의 남자분을 소개해주었다.
그분은 (언니와 같은) 대기업 직장에 명문대 졸업, 키는 176cm, 헬스를 즐겨하는 단단한 몸, 3살이라는 적당한 나이차, 그리고 최근 회사에서 진급까지 했다는 능력자였다. 얼굴도 꽤 괜찮았고 지금껏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로 여러모로 내 예상보다 훨씬 과분한 조건이었다.
이런 사람을 소개해 주는데 마다할 이유가 있겠는가. 성격도 언니를 통해 이미 보증된 일이었다. 번호를 주고받고 카톡 프로필 사진을 염탐하다가 발견한 명문대 졸업식 사진이 근사하다.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만 않는다면, 소개팅에서 이상할 일만 벌어지지 않는다면 금방 잘될지 모를 일이다. 조만간 남자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부푼 기대감을 안고 소개팅에 나갔다. 1차로 밥을 먹고 2차로는 칵테일 바에 가서 술 한잔까지 했다. 꽤 오랜 시간을 이야기했지만 뭔가 이상하다. 상대에게서 아무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너무 오랜만의 소개팅이라 긴장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내가 이렇게까지 까탈스러운 사람이었나?
이성을 보는 눈이 까다롭다 생각해 본 적 없던 나다. 아니 나만큼 조건 안 보는 사람도 있을까. 스무 살 중반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월 백만 원도 못 벌었지만 내가 능력껏 먹여 살리면 된다는 생각으로 만났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조건보다는 사랑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리고 이렇게 '가난'을 함께 헤쳐나갈 수 있어야만 그것이 '진정한 사랑'이라는 착각을 하기도 했었다.
물론, 더 이상 빈털터리를 만날 생각은 없다. 하지만 그 뒤로 생각한 조건 한 가지 마저도 30대 직장인에게 그리 어려운 조건이 아닌 것이다. 돈의 크기와 상관없이 성실하게 돈을 벌며 돈이 주는 자유와 안정감을 한 번이라도 느껴본 사람. 부모님의 재산이 많거나 나보다 연봉이 높을 필요도 없다. 그리고 직장을 갖고 있는 성인이라면 '돈을 벌고 쓰고 모으는 경험'을 통해 당연하게 느껴봤을 법한 일일 것이다.
그런데 대기업 다니는 훨씬 좋은 조건의 남자를 내가 거절했다. 나도 모르는 검은 속내가 있던 걸까. 대체 나는 어떤 사람을 배우자로 원하는 걸까? 조건 따지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정작 내가 원하는 조건은 제대로 생각해 본 적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배우자 조건을 적어보기로 했다. 소개팅은 망쳤지만 내 검은 속내라도 제대로 알아낸다면 까다로운 사람이라 인정이라도 할 테니 말이다.
어떤 사람과 살면 좋을까. 결혼이 연애와 비교해서 가장 큰 차이점은 '평생을 같이 살 사람'을 고르는 일일 것이다. 그러자 나와 비슷한 사람과 살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 배우자 조건 3가지
1. 자립심 : 지금까지 스스로 삶을 선택하고 책임지며 살아온 사람.
진로와 직업처럼 삶의 큰 일들은 스스로 선택해 온 사람, 생활면에서는 자취 경험이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음식을 해 먹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스스로의 생활을 책임져 본 사람이 함께 살기 편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지금까지 혼자 알아서 잘 먹고 잘 살아온 사람이라면 함께 살 때도 알아서 잘 먹고 잘 살 가능성이 클 것이다.
2. 독립심 :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부모님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한 사람.
외국에서 일을 하면서부터 - 혼자 집을 구하고 방세와 공과금, 생활비, 식비까지 전부 스스로 번 돈 안에서 해결하고 선택해야 했다. 한국에서도 직장생활과 자취 경험이 있었지만 부모님이 계신다는 생각에서인지 집을 구할 때도 항상 도움을 받았고 평소에는 반찬이나 생활용품을 받아 왔다. 믿는 구석이 사라진 외국에서 비로소 완전한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결혼 전부터 부모님의 지원이나 도움 없이 독립된 삶을 살아본 사람이 결혼하고 나서도 부모에게 의존하지 않고 독립된 가정을 책임감 있게 꾸려 나갈 수 있을 것이다.
3. 유머/대화 코드 : 대화가 잘 통하고 재밌는 사람.
대화가 잘 통해서 이야기가 끊기지 않고 웃을 일이 많으면 좋겠다. 평생을 같이 살아야 하는데 대화가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까. 또 대화가 돼야 싸우더라도 제대로 풀 수가 있는 것이다. 만약 대화를 회피하거나 극도로 과묵한 사람이라면 같이 살기에 재미도 없고 대화로 인한 문제가 발생할지도 모른다.
이렇게 3가지를 적고 나니 외형적인 조건이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웃는 모습이 예쁜 남자" 외형적 조건은 이거 하나만 보기로 한다. 이 이상으로 바란다면 평생 결혼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더 적지 않기로 했다.
배우자 조건을 적고 나자 소개팅남이 떠올랐다.
34살까지 한 번도 독립을 해 본 적 없다던 소개팅남은 주말마다 부모님과 등산을 가는 것이 취미라 했다. 안정적이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분이었지만 나는 화목한 가정보다 소개팅남이 얼마나 독립적인 삶을 살아왔는지가 흥미로웠던 것이다. 대화 코드가 맞지 않다 보니 대화가 자주 끊겼고 그래서 소개팅남의 웃는 모습이 예쁜 지도 확인하기 어려웠다.
내가 까다로워서가 아니었다. 그저 서로의 인연이 아니었던 거었다. 그제야 내가 긴가민가했던 이유가 납득되었다.
상대가 결혼 상대로 괜찮은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면 정작 내가 원하는 배우자 조건을 잘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럴 땐 배우자 조건 3가지만 적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