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나 상담일지4
그동안의 고민과 걱정에 비해 퇴사는 담백하게 끝났다.
오랫동안 고민을 한 것이고, 퇴사만 세 번째 있는 일이라 그런지 이상할 만큼 담담했다. 금요일 오전에 퇴직금 정산표와 경력증명서를 받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종이 두 장에 정리되어 있었다. 오후 늦게부터 사람들과 작별인사를 하고 퇴근시간에 맞춰 짐을 싸서 나왔다. 토요일에 외근을 나갔고 이 업무를 마지막으로 이 조직에서의 일이 모두 끝났다. 팀장에게 업무 종료를 보고하고 “그동안 수고했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그다음 월요일에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 표는 3개월 전에 이미 사놓은 것이었다. 퇴사하면 뭘 하지 생각하다가 그 순간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떠올려보았다. 직장을 다니면서는 가기 힘든, 먼 바다로 가서 다이빙을 하고 싶고, 몇 년째 외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아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떠나게 되었다.
먼 길을 돌아 꿈꾸던 바다에 도착했다. 한 10일 정도 바다에 나가 실컷 다이빙을 했다.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고 이렇게 넓고 아름다운 세계가 있다는 것에 매 순간 감탄했다. 다이빙 후 시간을 내서 오래된 유적지도 찾았다. 어렸을 때 꿈꾸던 고고학자가 된 듯 한 기분이었다. 친구도 만났다. 그가 사는 곳에 묵으며 잠시나마 그의 생활 속으로 들어가 보았고, 함께 여행도 갔다. 그렇게 한 달 반을 보냈다.
이렇게 오랫동안 꿈꾸던 시간으로 걸어 들어온 뒤 되레 직장을 다니던 것이 꿈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까지 9시 10분 전까지 출근을 해서 하루 종일 일을 하던 나였는데, 그렇게 3년을 보내온 나였는데 그 성실하던 나는 이제 없고, 이제는 그때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겠구나, 아니,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하는 생각을 했다.
직장생활에서 소외감을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사직서를 내던지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기나긴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동화를 꿈꾼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주인공이 되기에는 나는 너무 게으르고, 하기 싫은 것이 많다. 수많은 사람들이 낭만을 쫓아 떠났지만 우리가 책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책을 통해, 그 밖의 매체를 통해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여행 끝에 무언가를 남긴, 성공한 소수이다. 이야기를 남기지 못한 다수는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물론 화려한 주인공이 되고 싶지도 않다. 수많은 도피성 여행의 끝에 나는 여행이 내 삶에 아주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여행을 떠나는 것이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거나 무언가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은 삶의 문제를 직면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 더 나은 내가 되는 밑거름이 되어줄 뿐이지, 결국 그 문제를 해결하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는 것은 삶으로 돌아온 나 자신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곳으로 와 있는가.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쉬고 싶었고, 내가 존재하던 시간과 공간에서 잠시 비켜 서 생각할 여유를 가지고 싶었다. 대단한 각오도, 계획도 없이 한가한 생각이나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3년을 일했는데 몇 개월쯤은 그럴 시간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뜨거운 햇살 아래 누워서 따뜻함이 몸을 간질이는 것을 느끼며 평온함을 느꼈고, 고요한 수평선을 앞에 놓고 멍 때리며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이 평온한 일상이 너무나 좋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여유와 평화로움은 얼마 만에 느껴보는 것인가. 다이빙을 하고, 산책하고, 밥을 해 먹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며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온전히 쉬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일을 할 때는 느껴보지 못한 편안함이었다. 돌아보면 직장을 다닐 때 쉴 수 있는 시간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퇴근 후나 주말에 시간이 있었지만 일주일에 두 번 수영장에 가는 날이나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고는 그저 누워있었던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이상한 것은 최대한 편한 자세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온전히 쉬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쉼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 에너지를 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상태, 즐겁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즐기고 쉬다 보니까 마음에도 여유가 생겼다. 이러한 여유로 인해 나 자신에게 집중하고, 나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나는 ‘문제적 상황’에서 벗어나야 문제가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우선 ‘나’는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고, 집안일하고, 다들 그렇게 살고 있기 때문에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런 일상을 유지하는 데 다른 사람보다 에너지가 많이 드는 사람이었다. 일상유지를 위한 물리적‧정신적 기초 대사량이 높다고도 할 수 있을까. 하는 것도 없는데 어느새 잘 시간이 되고, 쉰 거 같지도 않은데 주말이 다 지나는 이유는 내가 이런 ‘일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내가 스스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무수한 일들을 해내야 하며 그래서 알게 모르게 무척 애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지만 나의 이 피로함는 고려하지 않고 일상은 반복되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오늘의 나를 위축시켰다.
퇴근길 만원 지하철에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 순간 이 공간에서 사라지고 싶다, 정말이지 나는 출퇴근 자체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인 것 같았다. 물론 이 공간 안에서 서로에 닿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많은 사람들 중 이런 생활이 적성에 맞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말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같은 상황을 겪는다고 해도, 같은 감정을 느낀다고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강도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애쓰고 지키고자 하는 일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가 하는 의심이 자꾸 들었다는 점이다. 출퇴근은 괴로웠고, 일은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무료하고 그 무료함을 견디며 내가 얻는 것은 몇 푼의 월급 외에 무엇이 있을까. 내가 특별한 존재이고, 사실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이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소소한 일을 하더라도 내가 그것을 해내기 위해 들이는 노력에 비해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이 너무 적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일에 얼마만큼의 에너지를 쏟을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무엇을 얻고 싶을까. 그렇게 조금씩 과거의 일 경험을 돌아보고,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