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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 있는 일을 하면 만족할 수 있을까?

미완의 나 상담일지7

by 선주

출판 일을 그만두고 한동안 방황하다 다른 직업을 알아보기로 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나, 또 할 수 있나 생각하다가 미디어 분야나 언어교육 분야를 중심으로 일자리를 찾아보기로 했다. 방향은 잡았다고 하지만 구직은 녹록지 않았다. 몇십 통의 입사지원서를 써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었다. 예상치 못하게 구직 기간이 길어지자 점점 초조해졌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면접을 보고 불합격한 곳에서 임시직 일자리를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그곳과 4년 동안 인연이 이어졌다. 나의 두 번째 직업은 교육자였다. 이주민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그들이 이 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이었다. 언어에 관심이 있어서 대학을 다닐 때 외국어를 배웠다. 대단한 수준까지 올라간 언어는 없지만 몇 가지 언어를 배우다 보니 언어를 가르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교내에서 한국어 교사 양성과정을 개설한다는 광고문을 보았고 가장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를 가르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수강했다. 졸업 후 출판사에 취직을 해서 자격증 취득은 미루고 있다가 구직 기간 중에 자격증을 취득해 놓은 터였다.

첫 출근을 앞두고 밤을 새웠던 것이 기억난다. 양성과정, 자격증 준비 과정에서 한국어와 언어교육에 대한 이론은 배웠지만 그에 비해 실제 강의 경험이 적었고, 나에게 주어진 강의 시간이 거대한 공백 같이 느껴졌다. 그 공백을 어떻게 채워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다.

가르친다는 것은 나에게 내내 큰 도전이었다. 항상 나의 부족하고 못난 면을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보람이 컸다. 학생들의 한국어 실력은 조금씩 늘었고, 나와 그들 사이의 관계도 더 돈독해졌다. 부족한 면을 가지고 있는 사람끼리 만나서 내가 조금이라도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나누며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 좋았다. 또 내가 가르치는 일을 즐기고 이런 재주가 있구나 하는 것을 새로 발견할 수 있었다. 더 잘 알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나서 수업 준비에 에너지를 쏟던 것도 재미있었다. 이전에는 몰랐던 즐거움이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계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수업이 있을 때만 만날 수 있는 사람이었고, 수업이라는 한정된 장면에서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관계를 맺기가 힘들었다. 또 내가 가르치는 대상자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언어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던 차에 기관에 신규 직원을 채용하는 공고가 났다. 정식으로 고용 계약을 맺고 조직에 속해서 일을 하게 되면서 더 많은 일을,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지원했고,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시작하면서 수업이 끝난 후에 찾아와도 언제든 만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서 기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론은 앞서 퇴사 과정을 쓴 글에서 말한 것처럼 실망의 연속이었다. 조직과 나의 처지가 안정화되자 방향성이 사라졌다. 대상자의 필요보다는 조직과 사업의 안정성과 성과가 우선시 되었다. 그 속에서 나는 대상자와 조직의 요구 사이에서, 교육자와 행정가 사이에서 역할 갈등을 겪게 되었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어서 선택한 일이었지만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오히려 뒷걸음질만 친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나는 가치를 쫓아 두 번째 일을 선택했다. 가치는 사람의 기본 신념으로, ‘내 삶에서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르다. 사람들은 남의 자유나 행복을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가치를 추구하고 실현할 자유가 있고, 가치 사이의 우열은 없으므로 누군가에게 특정 가치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

워크넷에서 제공하는 직업가치관 검사는 직업적 가치를 13개(성취, 봉사, 개별 활동, 직업안정, 변화지향, 몸과 마음의 여유, 영향력 발휘, 지식 추구, 애국, 자율성, 금전적 보상, 인정, 실내 활동)로 나눈다.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항목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업을 선택하고 직업적 선택을 할 때 이러한 가치들을 기준으로 판단을 내린다.

나는 내가 일하는 조직이 지향하는 가치에 동의하였기 때문에 이 일을 선택했다. 그렇지만 내가 속한 조직은 내가 기대한 가치가 아닌 다른 가치를 쫓을 것을 요구했다. 또한 내가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요구했다. 다시 말해 나는 봉사, 성취, 변화지향, 영향력 발휘, 공동체에의 기여를 쫓아 이 조직을 선택했지만 조직은 나에게 직업안정, 몸과 마음의 여유, 금전적 보상, 실내 활동을 보장해주었으니 된 것이 아니냐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애초에 내가 속한 조직은 공정 영역에서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설립된 곳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는 조직의 양적 팽창이나 존재 자체가 운영 목적이 되어버렸다. 조직도, 거기에 속한 구성원도 편하고 좋은 길, 안정적인 것만을 추구했다. 결국 주어진 예산에 맞게 적당한 성과를 내는 것, 현상을 유지하는 것이 지상의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특정 조직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의 이름이, 예산의 규모가 특정 조직이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이윤 추구나 존재 자체가 설립 목적인 단체가 아니라면 설립 목적에 맞는, 스스로 가치 있는 조직이 되기 위해서는 조직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지금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항상 점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속해 있는 조직이 지원하는 대상자는 더 많아지고 더 다양해지고 있다. 이 조직은 그들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 다양성을 우리가 속한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길을 찾고, 그리고 그들이 이 사회에 적응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늘 살펴야 했다. 그렇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우리가 하는 사업의 틀을 유지하면서 그들에게 일방적으로 한국사회에 맞게 적응할 것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사업을 수정하자, 개선하자는 제안과 질문은 점점 사라져 갔다.


그리고 보수적인 분위기 속에 내 일을 내가 꾸려가는 재미와 보람이 없어졌다. 조직원은 열심히 주어진 업무만 하면 그만이었고, 더 이상을 요구하는 것은 서로를 힘들게 할 뿐이었다. 집단으로 무기력증에 걸린 듯한 느낌이었다.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없다는 실망과 불만을 느꼈고,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다. 누구 가는 조직은 어쩔 수 없으니 그냥 개인이 각별한 애를 써서 좋은 교사가 되면 된다고 말했다. 물론 그런 노력은 하려고 노력했지만 나는 그저 좋은 선생님, 어쩌다 만난 선한 사람이 아니라 사회의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실질적 도움을 주고 싶었다.


결국 고민 끝에 겉으로는 진취적이고 올바름을 내세우지만 사실은 무겁고 지겨운 이 ‘조직’에서 걸어 나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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