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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수 없을까?

미완의 나 상담일지6

by 선주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기에 앞서 나는 지난 직장생활을 돌아보기로 했다. 과거의 직장생활은 모두 실패하였고 그래서 지금 나는 서른이 넘어서도 진로를 탐색하고 있지만 실패를 복원하고, 그것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시 살펴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나의 첫 번째 직업은 출판 편집자였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언젠가는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만의 책’을 만들고 싶다고 하면 글을 써서 저자가 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나는 직접 글을 쓰기보다 글 쓰는 사람들을 도와 좋은 책을 만들어가는 쪽이 더 좋아 보였다. 다행히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좋은 기회를 얻어 작은 출판사에 입사할 수 있었다. 파주 출판단지까지 출퇴근은 고단했지만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무척 흥분했던 것 같다.

입사한 후 몇 달이 지난 후 돌아보니 상상과 현실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출판 편집이라는 일, 출판 편집자라는 직업, 출판사라는 직장에 대한 환상은 치열한 직업세계의 현장에서 판판이 깨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책의 내용만큼 물성(物性)이 중요하다는 것, 책은 하나의 상품(商品)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전과는 다른 눈으로 책을 바라보는 것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그건 괜찮았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을 때는 이전과는 새로운 시각을 가져야 하고, 이런 부분에 대한 전문성을 쌓을 때 훌륭한 편집자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책을 위한 시장조사를 할 때, 기획회의에 들어갈 때, 새로 출간될 책에 대한 홍보 방향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자꾸만 나 자신이 이 산업에서 요구하는 인력과 거리가 너무 먼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책, 의미 있는 책보다는 잘 팔릴만한 책을 생각해야 했고, 좋은 원고를 애써 발굴하기보다는 이미 유명한 사람의 원고를 받는 편이 좋았다. 또 편집자의 일상적인 업무라는 것은 매우 따분하고 모호한 일이었다. 구간(舊刊)에 관련된 잡무를 처리하고, 누군가 기획한 책의 교정이나 하는 것이 편집자가 하는 일의 전부인 것만 같았다. 물론 그것이 편집자의 업무 중 중요한 부분이고, 나 또한 좋은 책을 만들기에 수련이 되지 않았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렇지만 사회는 ‘좋은 책’을 요구하지 않았고, 출판사는 ‘좋은 편집자’를 길러내지 않았는 것만 같았다.

초과 근무가 너무 많다는 것도 문제였다. 편집 일은 매우 노동집약적이었다. 무거운 것을 들거나 옮기거나 하는 것이 아닌 오랜 시간 집중하고 앉아서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어야 했다. 서로 일을 줄여가는 방향으로 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출판사는 너무 영세했고 출간 일정은 언제나 촉박했다. 그리고 나보다 연차가 조금 쌓인 선배들이 일을 하는 것을 보면 연차나 경험이 쌓인다고 해서 이 일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 모든 문제는 출판 시장이 위축됨에 따라 일어난 현상이었다. 이 업계는 매해 단군 이래의 최대 불황을 갱신하고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출판사들은 과거에 잘 팔렸던 구간에 기대 현상유지만 하고 있거나 팔릴 만한 책을 중심으로만 투자를 하였다. 또 비용을 줄이기 위해 외주, 임프린트 방식을 도입했고, 직원들에게 당연한 듯 초과근무를 요구하였다. 그렇지만 동시에 문화산업을 주도한다는 옛날의 영광을 버리지 못했다. 고고한 척 문화산업을 이야기하지만 결국엔 영리, 이윤, 효율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행태가 위선적이었다.


혹시나 다른 길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회사를 옮겼다. 이번에는 단행본이 아니라 잡지를 만들었다. 전에 비하면 업무 강도는 높지 않았고 잡지의 내용도 퍽 의미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잡지를 편집하고 조판(편집한 원고를 편집자의 지시대로 순서, 행수, 자간, 행간, 위치 따위를 맞추어 책 꼴을 만드는 일)을 했다. 처음에는 적당한 업무 강도와 저녁 있는 삶에 만족하며 지냈다. 하지만 일이 재밌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편집장과의 갈등을 겪었다. 그는 자신과 회사를 분리하지 못했고, 공사 없는 일처리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부담이 된다는 사실을 외면했다. 잡지는 희망을 말했지만 그것을 만드는 나는 괴로웠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다달이 책은 잘 나왔고,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렇게 두 번째 사직서를 썼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으면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던 나는 그렇게 연달아 고배를 마셨다. 문제는 무엇일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직업상담의 고전이라 불리는 특성요인 이론에 의하면 합리적인 직업 선택을 위해서는 우선 자신에 대한 이해와 직업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한다. 나와 직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직업을 선택할 때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 이때 자신에 대한 이해는 내가 좋아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은 무엇인가, 내 성격에 맞는 일은 무엇인가 등을 아는 것이다. 이러한 흥미, 가치, 능력 등은 직업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에 표준화된 검사로 측정하고 진단하기도 한다.

이 이론에 따르자면 내가 첫 번째 직업 선택에서 실패한 이유는 자신의 다양한 면을 고려하지 않고 흥미만을 쫓아 직업을 선택하였고, 또 내가 원하는 직업의 실제가 어떠한지 진지하게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막연한 환상만을 쫓아 직업을 선택했고, 현실과 환상이 부합하지 않아 그만두게 된 것이다. 이것은 부정하기 힘든 사실이었다. 나는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이 일을 선택했으나 현실에서 내가 수행해야 하는 업무는 환상과 달랐다. 반복적인 업무에 동기부여가 되지 않았고, 편집자의 주요 업무인 ‘교정’이라는 직무에 별로 재능이 없었다.


하지만 그때로 돌아가 편집자라는 직업세계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았더라고 해도 나는 그 직업을 선택했을 것 같다. 같은 직업이라고 해도 문화마다 사업장마다 조직마다 다른 양태를 보인다. 표준적인 직업세계에 대한 객관적 분석을 한 뒤 직업세계에 뛰어든다는 것은 너무 이론적인 이야기이다.

결국 직업선택은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개인이 우선순위를 정하고 선택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 선택은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나의 선택에 있어서 핵심적인 문제는 정보가 부족하다는 것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면 안 되나?” 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생계를 해결할 수 있으면 행복할 것이다’는 의견과 ‘좋아하는 것이 직업이 되면 더 이상 그것을 순수하게 좋아할 수 없었다’는 의견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나의 경험을 돌아보자면 나는 책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책 읽는 즐거움을 잃었다. 그 일을 하기 전에는 독서가 취미이자 쉼이었는데 하루 종일 모니터와 교정지를 보다가 집으로 돌아온 뒤에는 더 이상은 읽는 것으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면 직업과 취미를 분리하여 ‘직업’으로는 적당히 잘할 수 있는 일을, ‘취미’로는 고유한 나의 흥미를 쫓는 일을 찾아야 할까. 그리고 직업으로 자아실현을 한다는 생각은 불가능한 꿈일까. 그때의 나는 이 사실에 절망하고 퇴사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양극의 선택지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들은 그 사이에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꾸준히 좋은 책을 펴내고 있는 작은 출판사들, 누군가 알아주지 않아도 자기의 이야기를 펴내는 독립출판물들을 보면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절망할 것이 있었나 싶다. 그리고 그때의 나는 기존의 구조가 답답했지만 동시에 그 안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이중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은 가능하다. 다만 새로운 눈으로 보고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며 새로운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 애써야 할 것이다. 나도 그때로 다시 돌아가면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려 노력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다시 ‘출판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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