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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함 이겨내기

바닷마을 작은집 14

by 선주

창호 시공이 끝난 다음 날은 지붕의 처마를 마감했다. 목조주택의 처마(소핏, Soffit)는 지붕 끝에 벽체 밖으로 튀어나온 부분을 말한다. 이 처마를 통해 지붕 공간의 공기가 순환된다. 처마를 덮는 마감재는 PVC로 골랐다. 나무로 할까 아니면 다른 재료가 있나 했었는데 빗물이나 바닷바람 같은 습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부분이라서 변형이 적은 플라스틱으로 골랐다. 어차피 답은 정해져 있다는 말처럼 돈도 없고 기술도 없는 그때의 나는 플라스틱의 '막 돼먹은 편리함'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처마에는 구멍이 뚫린 벤트를 설치해 지붕으로 공기가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다음으로 전기 배선과 설비 공정에 들어갔다. 전기와 수도는 집 안에 에너지와 물이 흐르는 배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신체의 혈관 같은 것이라고 할까. 전기는 전봇대에서 집안으로 들어온 다음 분전반을 거쳐 필요한 곳으로 퍼져나간다. 등, 스위치, 콘센트의 위치를 잡아주면 거기에 맞게 전선이 깔리고 마감이 된다. 평면도를 펴 놓고 등과 콘센트의 위치를 잡아 보았다. 콘센트나 스위치의 높이는 주변에 놓일 물건과 쓰임을 고려해서 잡았다. 나의 라이프 스타일을 고려하여 일반적이지 않은 곳에 배치를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작업자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도면에 표시하여 전달했다. 세부적인 수정은 현장을 확인하며 진행했다. 그럴 것까지 있나 싶다가도 멀티탭을 여기저기 설치하지 않도록 하고 애초에 배선을 잘하고 싶었다. 이런 게 집의 디테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신경을 쓴다고 해도 아쉬운 부분은 늘 남는다.)
수도 설비는 상수도를 통해 들어온 물이 집안의 필요한 곳에 잘 돌도록, 또 쓰고 남은 물이 하수도를 통해 잘 나가도록 하는 관을 설치하는 것을 말한다. 집안에서 물을 필요로 하는 곳은 화장실과 주방, 그리고 보일러이다. 보일러 분배기는 집의 중앙인 화장실 앞 계단실 아래 설치했다. 화장실은 샤워기 자리, 위생기 자리, 세면대 자리, 세탁기 자리를 확인해서 물이 들어오도록 하였고, 샤워 부스 아래와 위생기, 세탁기 자리에 오수가 빠져나가는 길을 만들어 놓았다. 주방은 개수대로 물이 들어오고 빠졌다.


우리 집 주방은 'ㄱ' 모양이다. 왼쪽 끝에 냉장고가 있고 그 옆으로 개수대가 있고, 꺾어진 공간과 가운데 부분은 빈 조리대, 오른쪽 끝에는 쿡탑이 있다. 내가 조리하는 순서에 따라 동선을 정했다. 쿡탑 위에 후드는 생략했다. 시끄러운 소리를 싫어해서 후드가 있어도 도통 사용하지 않아서 과감히 없애버렸다. 시공사에서는 이렇게 주방을 꾸미는 것을 적극적으로 만류했다. 일반적이지 않은 동선(보통 개수대는 주방의 중앙-그러니까 우리 집의 조리대가 있는 곳에 둔다고 한다)이고, 후드가 없으면 조리 냄새가 빠지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조리대 앞에 창문이 있으니까 필요하면 창으로 환기를 하면 되고 동선은 내가 편한 게 제일 좋은 것 아니냐고 말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하면 수도 배관도 더 짧아진다. 그런데 설비가 끝난 뒤 확인해 보니 수전이 내가 원하는 자리가 아닌, 시공사에서 맞다고 한 자리에 설치가 되어 었다. 요구대로 수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는데 나중에 후회할 수 있으니 다시 생각해 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올라왔다. 내가 살 집을 짓는데 내 생각이나 의견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이번 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서 내가 건축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내 돈을 내고 지으니 내 뜻대로만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이 공간에서 주로 생활하게 될 나의 라이프스타일, 나의 생각, 나의 지향, 그리고 그것들을 고려해서 내린 나의 결정을 존중받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내가 항상 옳은 것은 아니고, 경험이나 전문 지식이 더 많은 사람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상대방에서 제기하는 의견이 타당하면 받아들일 준비도 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 이유라는 것이 다들 그렇게 한다 하는 말뿐이라면 나는 그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원래 그렇다는 말은 사실은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는다. 원래 그렇게 되던 이유가 있다면 그걸 말해주면 되는데 그런 설명은 없었다. 다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도 따라야 하는 법은 없다.
나중에 내가 내 선택을 후회하게 되더라도 내가 선택하여 실패한 것은 깔끔하게 내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질 수 있다. 내키지 않는 것을 선택해서 공연히 남 탓을 하는 것보다 그 편이 더 속편하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 너 잘났다 하며 팔짱을 끼고 어쩌는지 보고 있다. 그리고 뭐라도 조금 잘 못되면 그러기라도 바란 사람처럼 내 그럴 줄 알았다 하고 참견을 시작한다. 그냥 내 선택을 존중하고, 경험할 기회를 주고, 내 스스로 혼자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먼저 도와달라고 할 때 도와주면 안 되나. 나는 다시 강력하게 이야기해서 내가 원하는 부엌을 지켜냈다.


집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것은 의사소통이었다. 나는 건축주로서 일방적인 권리 행사를 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렇다고 해서 네네 하며 주는 대로 집을 짓고 싶지도 않았다. 내 집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과 동등하게 소통하며 요구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것은 비현실적인 바람이었다. 여기에는 건축주와 시공사의 갑을관계, 건설현장의 구조적인 문제(공사 기일과 하청 혹은 일용직 노동 계약 등), 기술자와 비 기술자의 정보와 경험의 차이 등등의 이유들이 있지만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것은 ‘젊은 여성 건축주’라는 존재의 입지가 매우 모호하다는 점이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했다. 나이가 어린 여성인 나는 '사장님'도 아니고, 결혼 안 했으니 '사모님'이고 부를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000 씨도 되었다가 아가씨도 되었다가 사장님도 되었다가 그랬다. 호칭 문제와 함께 나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어려워하는 것도 느껴졌다.

나 역시도 혼란스러웠다. 나는 계약서 상의 갑이지만 동시에 약자인 젊은이이자 여성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나에게는 젊은이와 여성의 역할이 은연중에 기대되었는데(어쩌면 스스로 그렇게 기대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소수자 문제에 있어서 실제로 기대되었냐는 것과 기대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닭이냐 달걀이냐 하는 문제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나는 그 둘의 미덕인 고분고분함을 갖추지 못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묻고, 원하는 게 있으면 요구했다. 그러면 된 것 아닌가 하겠지만 그러면서 항상 눈치를 봐야 했다. 나의 질문과 요구가 과한 것은 아닌지 되묻고 곱씹었다. 조심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조심하는 쪽은 젊은 여성이어야만 했다. 물론 나는 건축주의 미덕인 부유함 역시 갖추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요구와 주장은 분명하고 가진 것은 빠듯한 그런 사람이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말이다.)

원치 않게 만들어진 나의 이미지와 처지를 인정하고 마주한다는 것은 퍽 곤란한 일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사람이라고 해서 자기만의 집을 가지지 못할 이유는 없지 않나. 나는 되레 이런 나를 닮은 집을 짓고 싶는 생각을 했다.


원래 집 뒤안. 덩굴식물과 거미줄이 가득했다. 내 마음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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