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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관계 맺기

바닷바을 작은집 24

by 선주

마무리 작업이 한창 진행되던 날, 옆집(기와 사건의 옆집과 다른 집)에서 전화가 왔다. 옆집 아저씨는 집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고 말했다. 옆집과 우리 집은 한 면이 붙어 나란히 놓여있다. 우리 집 대지가 조금 높아서 석축이 경계를 나누고 있다. 문제는 그 석축의 경계가 실제 대지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석축을 쌓을 때 잘못 쌓은 것인지, 대지를 나눌 때 잘못 나눈 것인지, 아니면 다른 사정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알 길은 없지만 사연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은 문제다. 당황스러웠지만 사실 이런 일은 시골 마을에는 빈번하게 있는 일이라고 했다. 대부분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크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들 지내는 것 같다.


우리 집과 옆집은 다행히(?) 어느 한 집이 일방적으로 다른 집의 땅을 침범한 것은 아니었다. 집 뒤편은 우리 집이, 집 앞편은 옆집이 땅을 점유하고 있었다. 측량을 할 때 옆집에서도 나와서 확인했던 바고 그때 서로 사용하고 있는 땅이 눈대중으로 비슷해 보여서 양해를 하고 이대로 사용하기로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었는지 옆집 아저씨는 정확한 것이 좋겠다면서, 집을 다 지어가는 마당에 집 사이에 있는 석축을 무너뜨리고 새로 쌓기는 어려우니 담장을 쌓을 때 우리 집이 넘어간 부분을 들여서 경계를 따라 만들라고 했다. 집 앞마당에 우리 땅을 쓰는 부분은 찾아갈 테면 찾아가라고 했다. 우리 집 땅을 찾으려면 석축을 앞으로 내어 쌓아야 하는데 그러면 옆집은 마당이 이상한 모양이 된다. 대문도 옮겨야 한다. 감정적으로 대갚음을 하려는 것이 아니면 무리해서 되찾아 오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다. 물론 우리 집에서 내주는 땅도 옆집에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에 서로 양해하고 지금처럼 사용하기로 한 것이어서 이런 말씀이 갑작스럽기도 하고, 서로 땅을 찾아가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그러나 싶었지만 옆집 아저씨의 말은 완고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땅 때문에 옆집의 옆집과 소송까지 해서 자기 땅을 찾았다고 한다. 지금처럼 지내도 큰 문제는 없지만 혹시나 모를 문제에 대비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 말도 이해가 가고 문제를 일으키고 싶진 않아서 그러겠다고 했다.

집 경계에 맞게 들여서 담장 첨단을 들여 쌓아 달라고 시공사 대표에게 이야기했다. 담 밖으로 넘어간 석축의 윗부분은 콘크리트를 부어 마감을 해 주기로 했다. 축대를 따라 난 덩굴식물은 모두 가지를 쳐주었다.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말은 그냥 그렇게 하기로 했다며 넘겼다. 우리 집 땅을 찾아오는 것은 다음으로 미뤘다. 당장 그 땅이 없어서 아쉬운 것도 아니고, 괜히 손해 보기 싫은 마음 때문에 공사가 커지는 게 싫었다.
나도 분명한 것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앞으로 이웃이 될 사이인데 그럴 것까지 있나 싶다가도 비슷한 일로 송사까지 있었다고 하니 확실히 해 두고 싶은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이해가 가면서도 솔직하게 마음 한구석은 좀 불편했다. 역시 집 짓는 일이 쉬운 게 아니구나, 이웃과 잘 지내는 것도 어렵구나 생각했다.

우리 집을 짓는 과정에서 주변에 많은 피해를 끼친 것을 알고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지인이 마을 안에 집을 짓겠다고 난리를 피워대는 통에 여러 가지로 불편했을 것이다. 조심한다고 했지만 소음이나 먼지를 완전히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고, 공사 차량이나 자재 때문에 늘 다니던 길이 막혀 기다리거나 돌아가는 일도 있었을 것이다. 나도 폐를 끼치며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한편으로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모두들 그렇게 집을 지었고,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사람이 모이고 마을이 생길 수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주변에 진 빚은 지나가는 길에 만난 이웃들의 궁금증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을 하고, 목재나 시멘트 등 남은 자재들은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나누어 주는 것으로 조금씩 갚았다. 물론 이건 아주 조금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남은 것은 차차 갚기로 하고, 나도 내 다음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불편함을 감내해주어야지 마음을 먹었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원래 있던 마을에 들어가는 것이니까 원래 살던 주민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파트에서 살 때처럼 이웃과 남처럼 지낼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서로 불편한 일이 있다고 해서 상종도 안 하고 원수처럼 지내고 싶지도 않다. 만나면 안부도 건네고, 혹시 도울 일이 있으면 돕고 서로의 사정을 이해하는 그런 이웃으로 지내고 싶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내뱉는 차별적인 말들(호구 조사를 많이 당했다. 왜 과년한 처녀가 혼자 사느냐, 시집은 왜 안 가느냐, 왜 큰 개를 키우냐는 질문에는 FAQ를 작성해서 동내 방송을 하고 싶은 심정이다.)과 폭력적인 행동(불쑥 집에 찾아온다든가 하는)을 참아가며 살 생각은 없다.
모든 관계가 그렇듯이 적당한 거리를 지키는, 좋은 이웃이 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이웃과 불편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경계 나누기와 넘나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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