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주 크루즈 승무원 되던 그 첫날
2017년 4월 3일 승선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승선이다. 사실 전날 잠을 한 숨도 자지못했다. 너무 떨려서. 세계일주 크루즈라니! 워낙 급하게 승선했던 터라 혹시나 빠진 서류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잠도 잘 못 자고 그렇게 비몽사몽공항에 도착했다. 사실 작년 4월 3일은 코스타의 첫 승선일이기도 했다. 바로 전날 날씨를 이유로 이틀이 미뤄지긴 했지만, 어찌되었건 나에겐 뜻 깊은 날인 듯 하다. 수속을 하고, 제주가는 항공편 게이트에서 수학여행 가는 고등학생들을 만났는데, 세월호 생각이 나서 마음이 아팠다. 저렇게 해맑게 쉴세없이 조잘조잘 거리는데, 뭐가 좋은지 아침부터 피곤하지도 않은지 캬르르르 웃는데. 지난 승선때부터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는데, 이번에도 잊지 않고 챙겨왔다. 잊지 말자는 소박한 나의 다짐.
국내선이긴 하지만 오랜만에 타는 비행기가 기분을 설레이게 하였다. 제주공항에 도착해서 보니 마중 나오신 분이 계셨다. 코스타 세레나 때 마중 나오셨던 분. 반갑다. 함께 승선한 친구들이 있었는데 같은 항공편으로 왔고 제주공항에서 만났다. 알고 보니 코스타 세레나에 있을 때 방문객으로 왔던 크루즈 양성과정의 학생들이었다. 해수부 크루즈 승무원 양성과정의 친구들이 이번에 함께 승선을 해서 제주방송과 관계자 분들이 크루즈 관계자분들이 크루즈 터미널에서부터 와 계셨다. 승선 후에도 서류에 사인하기도 전에 행사하는 곳으로 가서 행사를 했다. 아무래도 양성과정의 끝은 크루즈 승무원으로의 취업이 목표일 테니, 더구나 4명이나 세계일주 크루즈에 취업시킨 프로그램이니 큰 이슈가 되어야겠지. 나는 교육생이 아닌데 괜히 꼽사리 낀 것같은 느낌이 들어,끝나고 후에 따로 오피스에 내려가서 서류작성을 하였다. 안전교육을 받고 나니 리셉션 (세레나에서는 게스트서비스)에서 인도네시안 동료 한 명(안젤라)이 내려와서 이래 저래 구경도 시켜주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밥도 먹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승선하기 전 유니폼 사이즈 폼을 작성해서 보냈기에 혹여나 잘못 재서 하체비만 사이즈 때문에 유니폼 걱정이 많았지만, 다행히 큰 사이즈가 있었고, 조금 커 보이지만 그래도 9.5부 정도 되는 바지라 멋쟁이 바지가 되었다. 나를 위해 유니폼을 제작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거지. 괜한 걱정을 했네. 유니폼사이즈 서류에는 신발 사이즈도 적게 되어 있어 신발 제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검은 구두를 챙겨왔는데 다행이다.
새 승선. 새 신발. 새유니폼.
어린아이 마냥 신이 난다. 리셉션 동료들 모두가 나를 환대해주었고, 관심 갖어 주었다. 이 배에서 처음으로 뽑힌 한국인 리셉셔니스트였기 때문이다.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고 한명은 일본어 가능한 중국인, 두 명은 일본어가 가능한 인도네시아 친구들이었다. 관심이 대단하다. 관심을 받는 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고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곳에서는 모두가 다 영어를하는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본인 승무원들은 영어를 하지 못하였다. 일본어로만 대화하다가 갑자기 일본어 1도 못하는 한국인이 와서 자기네들도 신기한가 보다. 사실 나도 너희들이 신기하단다. 영어로 대화가 안 통해서.... ㅎㅎ 작년엔 완전 중국인들 사이에서 일하고, 올해는 완전 일본인들사이에서 일하게 되었다. 완전히 다른 환경이지만, 이렇게 친절한 사람들과 함께 라면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크루즈나 호텔 하면 다들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리고 이제껏 영어로 의사소통에 문제가 전혀 없었는데 이 곳은 예외였다. 오히려 나의 영어가 기본 능력이 아닌 다른 언어로서 능력으로 인정해 주어 조금 놀랐다. 그래서 나는 영어와 한국어 가능자. 하하. 다른 친구들은 일본어 가능자로 생각이 되었는데, 일본어를 못하니 다른 리셉셔니스트와의 소통이 잘 되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들도 노력하고 나도 노력하고 서로 도움이 되도록 해야겠다.그래도 영어,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안젤라가 성실하게 잘 가르쳐 줘서 잘 배우고 있다. 역시 사람을 만나는 것은 운이라는 생각이 드는데, 일복, 인복 많은 내가 다시 한 번 인정되는 순간이다. 기분이 좋다. 배를 타고 난 후에는 몸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욕심 부리지 않고, 일찍 잠에 들었다.
기대반. 설렘반.
숙소인 캐빈은 너무 좋았다. 창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세레나는 사무실, 캐빈, 크루즈 도 모두 아래층에 있어서 창문을 갖는 것이 소원일 정도였다. 2인 1실이고 책상 옷장 티비 침대 그리고 화장실 샤워실 다 갖추어져 있다. 예전에는 쭉 1층을 쓰다가 2층을 쓰니까 조금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창문이 있으니 괜찮다. 창문만 있다면! 수납공간도 넉넉하고, 옷장에 캐리어를 넣어도 넉넉할 정도로 짐이 없어 다행이다. 여행을 다니면 다닐수록 짐이 줄어든다. 이번에도 17킬로 캐리어와 5킬로 옷 가방이 전부였다. 노트북도 안가지고 왔다. 코스타 때는 잠잘 시간도 없었기 때문에 짐이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조금 후회한다. 가지고 온 책이 5권. 강제미니멀 라이프를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이렇게 소박하게 살고 싶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리셉션이 문을 닫는다. 야간 리셉션이 따로 있는데 우리는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이런 천국이 어디 있을까... 정말 대박. 이 곳은 천국인가보다... 난 전생에 나라를 구한게 틀림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