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크루즈 승무원 일기입니다
크루즈 승무원이라면 반드시 숙지해야 하는 암호가 많이 있다. 긴급 상황을 인지하고, 신속하게 각자 맡은 임무를 다하고, 대응하기 위함이다. 승객과 공유하는 것이 있고, 승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승무원만 공유하는 것도 있다.
그중 승객과 함께 공유하는 암호 중 하나가 해적 관련인데 바로 ‘브라보 탱고(Bravo Tango)’다. 크루즈마다 암호명은 상이하기도 한다.
오션드림 호는 세계일주 노선이라 일본에서 출발하여 아시아에서 거쳐 수에즈 운하를 통과하여 유럽으로 항해하는데 홍해 진입 전 해적 출몰 지역을 지나므로 해적 대비 훈련을 한다.
뉴스에서 해적에게 피랍된 어선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청해부대를 파견하여 구출하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말이다. 바로 그 부근을 지나게 되는 것이다.
해적 대비 훈련이 있는 날엔 승객과 승무원은 선내 방송으로 ‘브라보 탱고’를 듣는 즉시 선실로 돌아가 문을 잠그고, 창문도 잠그고, 커튼을 친 후 최대한 창문에서 떨어진 곳에서 대기해야 한다. 발코니가 있는 선실은 발코니로 진입할 수도 있고, 창문이 열리지 않는 선실이라 하더라도 총기로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승무원의 경우 만약 사무실에서 업무 중이라면 선실로 돌아가지 않고 사무실 문을 잠그고, 안에서 대기한다. 직급이 높아 유니폼 어깨에 안장을 달고 있는 승무원은 해적이 해당 승무원의 직급을 알아볼 수 없도록 안장을 뗀다. 높은 직급의 승무원은 인질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해적 대비 훈련은 주기적으로 해적 출몰 지역을 지날 때까지 승무원만 여러 번 실시하고, 승객과 승무원이 함께 실시하기도 한다.
해적 출몰 지역을 지나기 며칠 전부터 선실의 창문을 닫는 작업이 시작된다. 빛이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하기 위한 조치로 모든 선실의 창문에 철제로 된 큰 판을 고정시켜 빛을 차단한다.
내측 선실보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하고 창문이 있는 외측 선실을 선택한 승객 입장에서는 조금 억울한 마음이 들지도 모르지만 안전을 위한 것이니 어쩔 수 없다.
공공장소도 마찬가지인데 빛을 차단하기 위해 유리문마다 검은색 천으로 가리고, 밤에는 야외 갑판의 출입도 통제한다.
일주일 정도 위험지역을 벗어날 때까지 빛을 차단하며 항해한다.
승전 전, 부산에서 받은 안전교육 중 해적 관련 동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해적?’ 하는 마음으로 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해적 대비 훈련을 하고, 관련 조치들을 보니 언제 어디서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 대비의 중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오래전 이긴 하지만 피스보트가 해적의 공격을 받은 선례가 있다고 하니 선사에서 더욱더 신경을 쓰며 대비하는 듯 느껴진다. 철저히 준비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놓인다.
해적 출몰 빈도수가 높은 위험한 지역을 지날 때는 일본 크루즈이기에 일본 해군의 에스코트도 받는다. 낮에 야외 갑판에 가서 옆에서 함께 항해하는 일본 해군함을 볼 때면 어찌나 든든하던지.
각 국가에서는 자국민 보호를 위해 최선을 노력을 다한다. 아래 기사는 이번 수에즈 에버 기븐 호 사건 때 청해부대가 희망봉 우회 선박 보호 관련 기사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329169451504?input=1195m
사실 크루즈에는 승객과 승무원 등 많은 인원이 승선하고 있어 해적의 주 표적은 아니다. 오히려 크기는 크지만 최소한의 20여 명 정도의 승무원만이 승선하는 화물선이 표적이 되기 쉽다.
해적 관련 영화로 ‘캡틴 필립스(Captain Phillips)’가 있다. 2013년 개봉한 미국 영화인데 2009년 소말리아 인근에서 발생한 미국인 최초 피랍 사건을 실화로 했다.
세레나 호 승선 때 보고 오션드림 호 승선 때도 봤는데 아무래도 크루즈에서 해적 대비 훈련과 조치들을 하고 있으니 더욱 현실감 있게 느껴졌다.
소말리아 인근 해상에서 한 화물선이 해적 공격을 받고 점령하는데 필립스 선장이 선원들을 대피시키고 자신은 인질이 되어 구출되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해적이 궁금하다면 추천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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