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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221. 그림자 노동 vs 빈둥거림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 크레이그 램버트는 바쁜 현대인의 삶을 더욱 분주하게 만드는 주범이라며 뉴욕타임스에 '대가 없이 추가된 그림자 노동'이란 사설로 주목받으며 「그림자 노동의 역습」이라는 확장판 성격의 책을 썼습니다.


사람들이 돈을 받지 않고 회사나 조직, 가족이나 자신을 위해 행하는 모든 일(Work)들을 그림자 노동의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는데요, 오랜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이나 셀프 서비스, 물건을 값 싸게 구매하려고 발품을 파는 행위, PC나 스마트폰의 메일에서 스팸 메일을 관리하는 일, 바쁜 일상으로 인해 쇼핑몰, SNS 사용 때 비밀번호나 공인인증서를 주기적으로 바꿔야하는 시간 또한 이에 해당 될 것 같아요.


최근 은행 등 금융권에서 영업점 방문하는 고객의 창구 상담에 수수료를 유료화하겠다고 한 것이나, 다음카카오가 인터넷뱅킹을 배제하고 모바일 뱅킹만을 취급하는 인터넷은행 서비스를 출범한다고 한 것 또한 앞으로도 계속  증가할 그림자노동의 역습이라 풀이할 수 있겠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도착하는 이메일과 문자메시지 알림에, 마음의 평안을 찾지 못하고 노동 시간은 늘어나며, 최근 맥도널드처럼 종업원을 대신해 자동화기기가 주문을 받는 것 등 사적인 시간은 점차 줄어 들며 사람들은 삶의 주체가 되는 통제권을 빼앗기는 사회적인 모순에 빠져드는 모습을 이 책에선 성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또한 일과 여가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의 일상 전반에 폭 넓게 파고든 그림자 노동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리 사회와 경제를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도 상세히 설명하고 있지요.



'그림자 노동'은 본래 오스트리아 출신의 철학자 이반 일리치가 1981년 에 발표한 개념으로, 임금에 기초한 상품 경제 사회에서 집안 일(가사)처럼 보수나 대가를 받지 않고 당연히 하는 것으로 포장된 노동을 정의하기 위해 고안했다고 해요.


그림자 노동이 늘어나는 이유로는 첫째, 기술과 로봇의 발달을 들 수 있고 둘째로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양식이 점차 대중화, 보편화 되기 때문이며 셋째, 인터넷 등 정보 네트워크 시대에 접어들면서 끊임없이 개인정보를 입력해야 하고 넷째로는 사회적 기준의 변화로, 가족이나 타인의 삶에 관여하면서 같아요.



얼마 전 음악을 소재로 한 방송 예능 프로그램의 폐지 논란이 있었는데요, 시청자들이 음악만 듣는 걸 지나치게 한가하게 여긴다는 것이 이유였다고 하는데, 근대화의 산물로 근면과 성실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겨왔던 우리는 놀면서도 지식이나 교훈을 남기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낙오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조직이나 공동체 내에서 삶의 주체성을 잃은 채 걷거나 먹거나 쉴 때조차 스마트폰을 손에서 떼놓치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요.


최근 본 영화 <퍼스널 쇼퍼>에서 의류나 액세서리 등 물건을 대신 골라주는 전속 패션 코디네이터 일을 하며 남을 위해 사는 주인공은 유명인의 허상을 쫓으며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찾아 헤매는데요, 익명의 발신자부터 보내온 톡 메시지에 불안과 강박에 시달리는 주인공의 모습은 물질이 주체가 되버린 현대 사회에서 강박의 일상화를 잘 표현해낸 것 같아요.


앞서 소개한 그림자 노동과 영화 <퍼스널 쇼퍼>의 주인공처럼 강박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의 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심지어 멍 때릴 때조차 스스로 움직인다는 사실 알고 계세요?


미국의 뇌과학자 마커스 라이클이 지난 2000년대 초반에 인지 활동을 하지 않을 때 더 활성화되는 뇌의 특정 부위를 발견해냈죠. 즉, 휴식이야 말로 창의성과 통찰력의 근원이라는 것인데요, 우리가 그토록 폄하해 온 '빈둥거림'을 사유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백과사전에 빈둥거림이란, (사람이)별로 하는 일 없이 게으름을 피우며 염치없이 놀기만 하다라고 풀이돼 있는데요, 프랑스 출신의 영화감독 장 르누아르는 "모든 문명의 토대는 빈둥거림"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구글에서 업무시간의 20%를 빈둥거릴 수 있는 자기계발에 쓰도록 한 것 또한 이러한 통찰이 반영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의미하게 웹서핑을 하다가 무심코 발견한 여행지가 위기에 몰린 삶에서 탈출시켜주듯 그림자 노동으로 빼앗긴 삶의 주체성을 회복하려면, 빈둥거림을 사유해야 할 때가 아닌지 모르곘습니다.   


일상에서 삶의 에너지가 방전이 됐다면 빈둥거림으로 충전해보는 하루 되시길.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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