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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327. 사회적 치유 위해 질문할 때

세월호 트라우마 해결의 실마리..슬픔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경칩이 지났는데도 아직 패딩점퍼를 옷장에 넣어두기엔 꽃샘추위가 오래 가는 것 같아요. 전형적인 삼한사온 현상이 계속돼 신체도 옷도 좀처럼 거리의 패션과 거리두기를 한지 시간도 꽤 지났는데 말이지요.


1073일 만에 수면 위로 떠오른 세월호의 비극은 개인을 넘어 국가 전체에 상실과 공허라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안겼고, 아직도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된 미수습자 9인을 포함한 승선 신고가 되지 않은  무임 승객들 수색이 선결돼야 하고 사고 원인에 대한 진상 규명이 숙제로 남아 있죠.


지난 주말 광회문광장에서 재개된 촛불집회에서는 이러한 민심을 반영하듯 세월호의 무사 인양을 기원하고 신속한 미수습자 수색을 촉구하는 구호들이 주를 이뤘지요. 마치 아직도 충격과 상실감 속에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듯이요.



하지만, 정치권에선 50여 일도 채 남지 않은 19대 대통령 선거 정국으로 급변해 헌재로부터 파면된 대통령의 구속 등 후속조치보다 권력 다툼에 바빠 애초에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의 목소리는 온데간데 없고 이합집산으로 상황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겪은 유가족이나 학생, 가족들 외에도 국민 개개인의 정서적 차이에 따라 뉴스만 보더라도 가슴이 먹먹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우울감 등을 갖는 국민들이 많은데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은 부족해 보입니다.


지난 25일자 중앙일보에 실린 정겨울 작가의 칼럼에서는 "우리 사회는 상처의 치유를 ‘개인’에게 맡겨버리고, ‘네 상처는 네가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문제와 정면으로 대결하는 것을 회피해 왔다"며 "세월호의 트라우마는 ‘사회적 치유’가 함께할 때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전하고 있어요.



상실의 슬픔은 현실을 '부정'하다가 울분이 차올라 '분노' 단계를 지나 현실과 '타협'하는 단계에 이르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슬픔이 안으로 스며드는 '우울'의 단계를 거쳐 결국 슬픔을 '수용'하는 5단계로 진행된다고 하는데요, "슬픔을 완전하게 수용한다고 아픔이 곧바로 치유되지는 않는다"고 정 작가는 성찰합니다.


그는 우리가 강박에 사로잡혀 아직 치유의 단계에 못 미치는데도 슬픔에 휩싸인 사람들에게 억지로 슬픔에서 벗어나라고 강요하는 것은 슬픔을 억지로 봉합하는 것일지도 모르며 슬픔은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슬픔을 토로할 시간과 공간을 마련해주는 데부터 사회적인 치유는 시작될 수 있다고 하면서요.


특히, 심리학자 마크 엡스타인의 저서 「트라우마 사용설명서」를 인용해 붓다의 치유방식을 따라, '슬픔에 끝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그 순간부터 사회적 치유가 비로소 시작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슬픔이란 감정을 숨기며 억누르고 괜찮은 척 연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때론 우리의 마음이 상처받았고 때론 어떤 상황으로 인해 회한을 가졌음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말이죠.


JTBC의 뉴스룸을 진행하는 손석희 앵커가 자주 인용하는 故 김관홍 잠수사의 당부 가운데 소설에도 소개된 “사람은 죽어도 질문은 사라지지 않는다. 질문이 사라지지 않는 한, 그 사람은 완전히 죽은 것이 아닐 거다"라는 말에서 국민적인 트라우마를 가져온 슬픔의 원인은 무엇인지 질문을 멈추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가라앉았던 진실이 이번 인양으로 인해 국민들에게 질문을 되새기게 하고 온전한 치유로 이어질 수 있길 바랍니다.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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