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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505. 죄책감을 사유하는 다양성영화 3편

진실 규명을 통한 트라우마 치유와 마음의 평안 찾길 희망


온 국민이 그토록 열망했던 세월호가 육지로 인양되고 나서도 아직 밝혀지지 않은 채 미궁에 빠진 침몰사고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고 세월호에 오른 승객 중 미수습자 9인이 아직 가족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국민적인 트라우마로서 죄책감은 치유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 방영하는 드라마도 이러한 트라우마와 궤를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드라마 <귓속말>이나 <추리의 여왕><터널> 등에서도 직접 피해를 본 유가족이나 범죄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형사나 프로파일러는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고백과 함께 죄책감을 동기로 사건 해결과 진실 규명에 나서며 몰입감을 선사하는데요, 죄책감이란 감정은 평범한 일상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경험한 이들이 가지는 인간의 본성이라 생각됩니다.


스크린에서도 이러한 국민적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완성도 있는 다양성 영화들이 개봉하거나 준비 중인데요, 칸영화제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벨기에 출신으로 칸이 선호하는 거장 다르덴 형제의 신작 <언노운 걸>은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작은 균열이 초래하는 윤리와 죄책감을 사유합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소도시에서 기간제 전문의로 일하는 제니(아델 아에넬 분)가 어느 날, 진료를 마감한 후 울린 벨 소리를 외면하면서 이튿날 병원 인근에서 흑인 이민자 소녀의 변사체가 발견되자 소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이름을 찾아주기 위해 벌이는 미스터리 탐문 추적극을 그려냈어요.


제니가 신원불명 소녀의 행적을 직접 찾아 이웃 사람들을 하나둘씩 만나기 시작하는데요, 그가 만나는 주민들은 신경을 쓰지 말라고 조언하거나 때로는 협박을 일삼아 이들이 소녀의 죽음과 무관치 않음을 암시케 하고, 이러한 과정에서 제니는 폭력성과 이기심 등 인간 본성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을 갖게 됩니다.



영화 속에서 "끝난 게 아니니까 우리가 이렇게 괴롭겠죠"라는 제니의 말은 죄책감이란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서는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는 다르덴 형제의 제언처럼 다가오고, 세월호참사의 희생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며 아직 씻지 못한 국민적 트라우마에 갇힌 우리도 깊이 새겨야 할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의 삶에 주목해온 거장 감독은 이번에도 가족으로부터 외면당한 거리의 흑인 소녀의 위태로움을 조명하면서 불안과 부끄러움을 성찰합니다. 특히 이 영화는 극 중 마을 사람들이 마치 성직자에게 고백하듯 제니의 병원을 찾아 하나둘씩 진실을 털어놓듯 우리가 보내는 보편적인 일상에서 낯설음을 성찰하며 속죄하고 우리의 마음을 치유하는 고해성사처럼 다가옵니다.



올해 칸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2관왕을 차지한 데 이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외국어영화상을 거머쥔 이란 출신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신작 <세일즈맨> 역시 다음 주에 개봉할 예정인데요, 이 작품 역시 앞선 <언노운 걸>처럼 예기치 않은 사건에 직면하면서 밝혀지는 진실을 심리 미스터리극 형식으로 풀어냈어요.



영화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무대에 올린 이란의 중산층 부부가 극단 동료가 소개해 준 집에 이사를 오면서 겪는 위기와 몰락을 자극적인 이야기 전개나 감정의 과잉 없이 예리하게 포착해 냅니다. 극 중 욕실에서 머리를 감던 라나(타레네 앨리두스티 분)는 벨 소리가 울리자 남편 에마드(샤하브 호세이니 분)로 생각하고 무심코 문을 열어둬 괴한으로부터 폭행당해 정신을 잃는데요..



만약, '당신이라면 진실과 마주할 용기가 있는가'와 '복수와 용서, 선과 악을 분별하고 선택할 수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는 이 작품은 '내가 두려움에 떨 때 당신은 뭐했어'라며 우리 내면에 숨은 죄책감을 끌어냅니다.


경찰 신고마저 거부한 채 두려움에 떠는 아내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힌 남편이 겪는 불안과 자괴감은 부가 무대에 올린 연극의 스토리와 교차하면서 괴한의 정체를 알아내고도 서로 다른 결단을 내리는 남편과 아내의 선택을 통해 누군가를 판단하고 규정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조명하는 것 같아요.



또 한 편의 영화는 동명의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영화 <오두막>으로, 사랑보다 어려운 용서가 전하는 자존감 회복을 판타스틱하고 초현실적인 미장셴으로 그려낸 종교영화입니다.


어릴 적 아버지의 학대로 아내와의 신앙생활이 소극적인 태도로 변한 맥은 어느 날 자녀들과 떠난 캠핑장의 '오두막'에서 살인마로부터 막내딸을 잃는 사고를 당하면서  ‘파파ʼ라는 정체불명의 인물이 보낸 편지를 따라 오두막을 찾게 됩니다.



편견과 통념을 허무는 성부, 성자, 성령 등 성 삼위일체를 흑인, 유색인으로 설정하며 성서 속에서 물 위를 건넌 성자처럼 편견과 통념을 허무는 아가페적인 사랑을 통해 죄책감을 치유하면서 상처와 고통 속에 신음하는 이들에게 평안과 위로를 전하는 것 같아요.


특히, 극 중 맥이 막내딸에게 들려주는 인디언 공주의 설화에 등장하는 폭포는 오두막과 함께 아빠의 죄책감과 상처를 아물게 하는 치유의 공간으로 다가오며 영화를 보는 내내 애니메이션과는 결이 다른 기독교 입문 성서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영화 속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퀀스에서는 우리의 현실과 맞닿아 이제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질 때라는 성찰 얻게 되고, 극중 파파로 변신한 옥타비아 스펜서와 트라우마에 갇힌 샘 워싱턴의 감정 연기는 주목할 만합니다.


극장가나 방송 드라마나 사회 부조리와 죄책감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넘쳐나는 건, 우리의 트라우마가 아직도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요? 하루빨리 진실이 규명되고 모두의 마음에 평화를 찾았으면 좋겠어요.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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