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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닝레터_0609. 상대를 배려하는 침묵 서비스

정보의 홍수로 피로해진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배려 제공 차별화


업무차 일본에 출장을 갈 때나 여행을 할 때마다 도쿄의 전자상가인 아키하바라 부근을 지날 때면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걸으며 호객을 하는 걸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오래 전 청계천이나 동대문 의류 상가를 지나갈 때나 먹거리가 많은 골목길은 물론, 최근엔 테크노마트나 용산전자상가 등에서 "뭐, 필요한 것 있으세요?"라며 말을 거는 호객 행위가 여간 부덥스럽지가 않은데요.


'침묵이 미덕이다'라는 격언은 4세기경 인도의 승려 법구(法句)가 인생에 지침이 될 만큼 좋은 시구들을 모아 엮은 경전인 '법구경'에도 나오는데요, ‘마음을 다스려 입을 조심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라고 말이죠.



침묵하는 지혜로, 나를 부정하는 침묵을 통해 신념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것을 조명한 영화 <나는 부정한다>는 유대인의 경전 탈무드에 '침묵은 지혜를 지키는 방패'라는 격언처럼 역사를 왜곡하려는 집단에 맞선 달변가이자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 역사학자 데보라 교수가 자신의 신념과 역사적 진실을 지켜나가기 위해 역설적으로 침묵하는 지혜를 성찰하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공연한 말로 시비를 걸고 상대에게 빈틈을 보이며 긁어 부스럼을 내는 것보다 유능한 변호인단에 사건을 위임하고 상황에 따라 가끔 모르는 척 침묵하는 것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방패가 된다는 걸 보여준 것인데요, 정보의 홍수와 각종 아무 말의 난무로 인해 피로감을 느끼는 시대의 요구에 맞춰 최근 일본에서는 침묵하는 접객 서비스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국내에 각종 SPA 패션 의류 매장을 둘러 보면, 고객이 말을 걸기 전까지 점원이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는데요, 8일 자 중앙일보 인터넷판에서는 이러한 최근의 서비스 트렌드를 보도해 주목됩니다.



일본의 의류 브랜드 어반 리서치는 점원이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드러내는 쇼핑 바구니를 매장 입구에 비치해 이 쇼핑 바구니를 소지한 고객에겐 인사말이나 호객을 하지 않도록 지난 5월부터 '침묵의 접객 서비스'를 시험적으로 도입했어요. 침묵하는 접객은 점원의 도움을 요구하는 고객에게만 서비스를 집중하면서 매출도 늘릴 수가 있었다고 하는데요.


교토시 소재의 운수회사 미야코 택시도 올해 3월 말부터 침묵 차량 10대를 시범 운행하고 있는데요, 이 택시들은 '운전사가 말을 거는 것을 삼가고 조용한 차내를 제공하고 있다'라는 안내문을 조수석 뒤에 부착해 택시기사는 목적지나 요금을 지불하거나 고객의 질문에 답할 때를 제외하고는 일체의 잡담을 하지 않는다고 해요.


필자 역시도 국내에서 택시를 이용할 때마다, 함께 타는 아이에게 신경 써주는 건 고마운데 무작정 자치단체장의 행적을 비판하거나 정치적인 이슈를 늘어놓는 택시기사의 말은 언짢게 들려 침묵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데요, 향후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무언의 서비스가 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일부 고객들이 호객을 하는 점원을 불편해한다는 점에 착안해 강남 직영점 매니저가 낸 아이디어로부터 국내에서도 지난해부터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가 '혼자 볼게요' 바구니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해요. 이니스프리 매장에는 '혼자 볼게요'와 '도움이 필요해요'라는 두 가지 피켓 앞에 쇼핑 바구니를 비치해놓고 도움을 요청할 때만 점원이 다가와 설명해주고 고객의 기호와 피부에 맞는 제품을 추천해준다고 합니다.


특히, 화장품은 SNS 입소문을 통해 '혼자 볼게요' 바구니 인증샷이 해외 네티즌들에게도 알려져 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들에게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해요.


시대가 변하면 서비스도 변해야 하는 것일 텐데요, 소통이나 공감을 구실로 하루에도 몇 번씩 걸려오는 대출 알선, 휴대폰 교환, 보험 가입 등 호객행위 홍수로 피로해진 사람들에게 여유로운 배려를 제공하는 '침묵의 서비스'가 새로운 서비스 트렌드로 확산될 지 귀추가 주목됩니다.


From Morning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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