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어둠의 시기 견뎌내고 생명과 빛의 기운 공유하는 계기
어제는 남북 분단의 비극의 계기가 된 한국전쟁 발발 67주년을 맞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한국전쟁의 의미를 되새기는 평화 집회가 열렸죠. 미국 워싱턴에서 10년째 매년 한국전쟁 휴전 기념일인 7월 27일에 집회를 개최해 온 '리멤버 7.27'의 재미교포 한나 김씨의 주최로 열렸다고 하는데요.
미국의 찰스 랭겔 전 의원의 수석보좌관으로 있던 김씨는 한국 전쟁 발발과 휴전일을 기억하고 이를 평화의 계기로 삼고자 지난 2008년부터 이러한 집회를 계속해왔다고 합니다
특히, 집회는 한국전쟁 발발을 의미하는 오후 6시 25분 시작돼 휴전 기념일인 7월 27일을 의미하는 7시 25분에 촛불을 켜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마음에서 한 손에는 태극기를, 다른 한 손에는 촛불을 들게 했죠. 이는 지난 19대 대선 때 촛불과 태극기로 갈라진 이념적인 갈등을 통합하고 화합하려는 것이었다고 하니 좋은 것 같아요.
뜻깊은 25일, 필자가 다니는 교회의 주일 설교에서는 최근 대형 참사나 화재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히스테리가 극해지며 충격으로 몰아넣고 있는 묻지마 살인 사건의 분노조절장애 현상을 소개하며 전쟁만큼이나 참담한 사회적인 갈등에 대해 성찰하며 사람을 살리는 전쟁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죠.
이날 설교 주제는 전쟁 영화에서 최근 소재로 등장하기도 한 '죽이는 영과 살리는 영'이었는데요, 성서 속 동생 아벨을 무참하게 죽인 가인의 이야기처럼 6월 한 달 동안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며 연이어 발생헀던 묻지마 살인 사건은 죽음의 문화에 포위되어 있다는 위기의식을 갖게 하고,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은 사건들롭 인해 마음을 암담하게 하고 있다고 전했죠.
아파트 외벽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인부가 틀어 놓은 음악이 시끄럽다며 입주자가 옥상에 올라가 밧줄을 끊어 버리는가 하면, 50대 원룸 사용자가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고 방문한 수리 기사와 다툼을 벌이다가 살해하는 사건, 30년 동고동락한 아내의 잦은 외박으로 다투다가 아내를 살해한 남편, 부산의 한 아파트에 발견된 영아 시신 2구는 동거남이 알게 되면 버림 받을까 봐 두 아이를 출산한 여성이 저지른 사건이었고, 인천 초등학생의 살인을 트위터로 모의했던 두 명의 여고생 등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아 ‘분노 범죄’로 불리기도 하는 묻지마 살인이 점차 늘어나고 있어 사회적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고 전했어요.
사회심리학자들은 우리의 생각의 범위에 벗어나 예측이 불가한 묻지마식 폭력과 살인은 사회에서 소외감이나 박탈감을 느끼며 분노를 쌓았던 것이 욱하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며 원한 관계나 동기나 특정 대상이 없이 무차별로 행해지는 것으로 진단하고 있어요.
2015년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우발적인 범죄가 전체 폭력 범죄 가운데 41%를 차지했고 외부를 향한 폭력과 살인뿐 아니라, 자기 내면을 향한 폭력 또한 만만치 않아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14년 연속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의 오명을 씌웠고 더욱이 최근에는 집단 자살의 공포로도 퍼지고 있죠.
김난도 교수가 지난 2013년 소비 트렌드로 내세웠던 '코브라 트위스트' 가운데, 불황의 지속에 따라 신경질적이고 예민한 기운이 감지되는 사회적 히스테리를 경계해야 한다며 '날 선 사람들의 도시(City of hysterie)'라고 전한 바 있는데, 이렇다 할 해법을 찾지 못한 우리의 게으름이 이같이 생명을 경시하는 참혹한 사건을 매주하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6.25 한국전쟁은 남북한 민간 사상자가 100만 명이 달하는 등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나았지만, 올해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주목받았던 멜 깁슨 감독의 영화 <핵소 고지>와 하반기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덩케르크>처럼 사랑하는 마음과 생명 존중을 우선시해 사람을 살리는 전쟁을 일깨우는 한 에피소드를 목사님은 소개했어요.
전세가 악화하는 가운데 영화 <쉰들러 리스트>처럼 1950년 9월, 매일 아침 서울을 돌아다니며 전쟁고아를 살피던 군종 목사이기도 했던 러셀 블레이스델 공군 중령은 아이들을 피난시킬 방법을 찾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가 1951년 1월 4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수도인 서울에서 작전 사령부가 후퇴하라는 명령에 불복종한 채 불법 명령으로 시멘트를 싣고 있던 14대의 해병대 트럭을 이용해 전쟁고아 950명과 보모 80명을 제주도로 무사히 대피하는 '유모차 작전'을 펼쳤는데요, 감찰관의 조사를 받을 때 그는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었다"라는 말로 현대인들에게 깊은 감동을 전합니다.
우리는 지난겨울 광화문 광장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라는 교훈을 얻으며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했었지요. 앞서 소개한 공군 중령처럼 죽음과 어둠의 시기를 견뎌내고 생명과 빛의 기운을 이웃들에게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From Morni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