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지기 위한 습관이 성취감, 자존감 만든다
영화 <트루먼 쇼>를 보면,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특정의 목적을 위해 조작된 세계에서 일상이 24시간 전 세계인에게 생중계되면서 우리들의 엿보기 심리가 무언가를 대상화해 사생활을 침해한다는 데 섬뜩함을 느끼게 됩니다.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더 서클>의 경우, <트루먼 쇼>에서 한발 나아가 현대인에게 일상이 된 SNS(소셜네트워크 서비스)의 부작용을 조명하면서 투명한 사회가 주는 장점과 사생활의 필요성 사이에서 세상은 과연 어떻게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어요.
균형감이란, 인간이 처한 환경이나 신체, 정서 등에서 지니게 되는 본능적인 감각을 일컫는데요 균형감을 잃게 되면 어느 순간 범죄자가 되기도 하고, 열등감으로 나타나 시기나 질투심에 매몰되기도 합니다.
SNS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큐레이터로서 갖는 고민 중의 하나는 '내가 균형감을 유지하고 있는 걸까, 균형감을 잃게 되진 않을까?' 하는 불안감입니다.
자신만의 철학이나 생각을 SNS에 담는다고 해도 앞서 사례로 소개한 24시간 생중계는 아니기에 나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은 아니라서 균형감을 잃지 않기 위해 책도 보고 여행도 하고 멍 때리는 사색도 하는 것이겠죠.
스마트폰이 일상인 우리에게 다른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엿보기 욕망은 SNS에서 '있어빌리티'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습니다. '있어빌리티란, 소유를 뜻하는 '있다'와 능력의 영어적 표현 '어빌리티'(ability)를 결합한 것으로 '있어 보이게 하는 능력'을 일컫는다고 해요.
저명인사나 셀러브리티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거나 카페, 여행, 먹방 등 일상을 공개하는 것이 보편화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에 평가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발현된 것이라고 합니다.
필자가 SNS를 시작한 계기도 있어 보이려 한다기보다는 해시태그로 연결되는 타자들과 공감의 욕망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관심사와 생활방식이 유사한 사람끼리의 문화라 할까요?
또 하나는 남에게 보여주면서 내가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각성케 하고, 행복해지기 위한 습관을 만들며 이러한 습관들이 하나둘씩 쌓이면서 성취감과 자존감이란 피드백을 얻으려 했던 것 같아요. 자존감은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을 말하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자신을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문학평론가인 오민석 단국대 교수는 19일 자 중앙일보에 기고한 칼럼에서 "우리의 일상은 ‘보여주기’와 ‘보기’로 구성되어 있다"라며 "타자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며 자신을 알리고 싶어서 하는 '보여주기'가 소비 행위라면, ‘보기’는 저축하는 행위"라고 설명했어요.
그는 "외모를 가꾸고 꾸미는 일이 외부에 보여주고 싶은 욕망의 의식적·무의식적 표현"이라며 "충분히 인정받은 사람들은 보여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에 보여주기의 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합니다.
‘보여주기’는 자산을 드러내면서 소비하는 행위라 보여주면 보여줄수록 정서적 빈곤을 느끼고 바닥을 드러냈을 때 열등감을 경험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재충전이라는 이름으로, ‘보기’라는 행위에 몰입하는 것 같아요. 길을 걷거나 카페나 전시회를 찾거나 책을 읽는 것도 자아를 성숙하게 만든다고 하니까요.
"정신적으로, 문화적으로 가난한 사회일수록 보여주기에 몰두하고 스펙터클의 생산에 몰두한다"는 오 교수의 분석처럼 한국 영화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제작 규모가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일까요. 필자가 최근 스펙터클이 강조된 액션 영화에 재미와 매력을 갖게 된 것도 이 때문일까요.
최근 본 영화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로베르 두아노>에는 현란한 스펙터클은 없지만, 작가의 열정과 마음을 보여주는 한 컷의 사진에 감동을 담아내 인상적이었는데요, 필자에겐 인스타그램 세대에 던지는 위안과 희망같이 느껴졌어요.
한 컷의 감동을 만들어내기 위한 거장 사진작가의 특별한 호기심과 반항심, 인내심에 경외감을 느끼게 하면서 젊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평범함 속에서도 특별함과 디테일을 포착할 수 있다는 성찰을 하게 됩니다.
사진작가 로베르 두아노와 보여주기 방식에 차이가 있을 뿐, 인스타그램 세대에게 SNS는 삶 주변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담아내는 자존감 수업이 아닐까요?
From Mornin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