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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민의 리얼리티 일깨운 현의 앙상블

[리뷰]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 소통과 치유의 어울림


새 봄을 맞아 활짝 만개할 벚꽃 풍경이 아름다운 영화가 있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류장하 감독의 작품이다.


최민식 주연의 영화 <꽃피는 봄이 오면>은 관현악단의 오디션에 몇 차례 응시하지만 계속 좌절만 맛보는 트럼펫  연주자 현우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강원도 도계중학교 관악부 임시 음악교사로 부임하면서 겪는 이야기를 그려낸다.


소박한 음악가의 꿈을 품은 소시민 현우로 다시 돌아온 최민식의 존재감이 빛나는 작품은 실제 사실을 토대로 여러 에피소드를 엮은 현우의 다큐멘터리 영화라고 해도 좋은 순전히 그런 느낌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봄날은 간다>의 허진호 감독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이 영화는 126분의 러닝타임으로, 굴곡 없이 지루한 듯 전개되는 드라마와 함께 소극적인 갈등 상황에 따른 배경음악 선정 등 허 감독에 대한 오마주를 차용한 듯 보인다.


관현악단의 오디션에 몇 차례 응시하지만 계속 좌절만 맛보는 현우는 자신의 경제적 무능 탓에 오랜 연인 연희(김호정 분)의 사랑에 대해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다가 어느 날 떠난다는 말을 듣는다.   


밤업소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친구를 힐책하는 현우는 구청이 운영하는 주부 유료 강좌에 나가며 척박한 삶을 연명한다. 지루한 겨울을 보내고 있을 즈음, 강원도 폐광촌의 중학교 관악부 지도교사 모집공고를 보게 되는데..



막막한 현실 속에서 도피하듯 강원도를 향하는 현우. '현우에게 과연 봄이 찾아올까.' 이러한 마음이 <꽃피는 봄이 오면>이 관객에게 요구하는 감정선이다.


류장하 감독은 자극적인 사건 전개와 무리한 갈등 없이 현우가 새로 맡은 관악부 아이들을 통해 폐광촌의 남루하고 소소한 일상을 한 편의 다큐멘터리처럼 여과 없이 전달한다.


관악부원들과 1대 1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꿈과 음악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현우는 낯선 곳에서 이들과의 소통을 통해 삶의 정체성을 찾고 용기를 얻게 될까.



케니지를 능가하는 연주자가 되겠다며 트로트를 구성지게 불어대는 용석(김동영 분), 연주는 하고 싶지만 소리가 잘 안 난다는 재일(이재응 분)과 행상을 하는 할머니(김영옥 분), 그리고 재일을 통해 알게 된 약사 수연(장신영 분) 역시 탄광일로 병든 아버지의 병간호를 위해 시골 마을에 머무르고 있다.




영화는 전국대회에 우승을 하지 못하면 강제 해산해야 하는 도계중학교 관악부의 대회 참여 스토리에 현우와 주변 인물과의 관계 회복을 액자 형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아버지의 반대로 연주하지 못할 위기에 처한 용석과 할머니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재일 등은 영화 속에서 사건에 개연성을 얻고 관악부 아이들이 맞이하는 갈등의 순간이다.



영화 속 소통의 부재로 상징되는 라면과 현우가 만든 악보는 바닷가와 더불어 이들이 현우가 관계를 회복하는 주요 소도구로 사용된다.


특히, 현우가 친구와 함께 간 바닷가에서 연희가 재일의 트럼펫 연주를 통해 현우의 음악을 들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은 인물 간의 소통 회복에 복선처럼 다가오는 매우 인상적인 장면 중의 하나이다.


최민식의 전작 <파이란>에서 강재의 소통 상대가 되었던 백란처럼, 현우는 TV 속에 비친 행려자처럼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자신의 고단한 삶을 연이 약국에서 잠시 쉬어간다.



수연은 약국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현우가 여자 친구 연희와 관계를 회복시키고 그의 고질병인 위장병도 치유시키는 인물이다. 어머니께  드릴 영양제를 사러 간 현우에게 소화제까지 얹어주는 수연으로부터 대인관계 회복을 위한 치유를 얻는다.


영화는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소시민의 일상을 관현 악기가 사용된 배경음악이나 등장인물의 연주를 통해 자연스레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현우와 연희의 애정 갈등, 현우와 수연의 대화, 관악부 아이들 가족을 둘러싼 여러 에피소드들은 관현악의 울림을 통해 극적인 감동을 낳고 삶의 리얼리티를 회복케 한다.



영화가 끝난 후에도 영화 속 선율은  깊은 여운을 낳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연희의 아파트 앞에서 봄을 만끽하는 현우와 함께 봄꽃 축제의 정취에  빠져든다.


하지만 류 감독은 결코 현우와 연희, 그리고 관악부원들의 대회 결과 등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관객에게 다양한 추측을 가능케해 여운을 던진다.


즉, 소통에 힘들어하고 삶의 피로에 찌든 현대인들에게 자신의 삶으로부터 리얼리티를 회복하도록 맡겨놓고 있는 셈이다.

-  2019.3.30 OBS 시네마에서

/소셜필름큐레이터 시크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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