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절차만 공정하면 문제없나요?
비정규직 직접고용은 공정하지 않다?
저는 공덕역 근처에 살고 있는데요. 가족들과 경의선 숲길을 자주 산책합니다. 몇 년 전 경의선 숲길 근처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 사람들에게 홍보물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는 인천국제공항공사 정규직 노조의 홍보물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1호 공약은‘비정규직 제로’였죠. 공약에 따라 정부기관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역시 보안검색요원을 청원경찰 형태로 직접 고용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노동조합은 졸속으로 추진되는 정규직화에 반대하며 청년의 기회를 박탈하여 공정성이 없는 전환이라고 비판했죠. 정규직 노조의 집회에는 취업준비생도 실제 참여했습니다.
정규직 직원들은 시험을 통해 좁은 취업문을 뚫고 입사하였습니다. 인천공항은 (코로나 전) 공기업 중에서도 높은 경쟁률을 자랑하는 곳이었습니다. 실제로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공기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어요. 취업준비생에게는 꿈의 직장이기도 했죠. 취업문은 정말 좁습니다. 노력만으로 통과할 수 있는 취업문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모두 최선을 다합니다. 취업준비생에게 공공기관의 채용시험은 공정한 경쟁을 위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시험이라는 공정한 경쟁이나 노력도 없이 대통령 말 한마디에 취업문을 통과하는 것은 간신히 취업문을 통과한 사람들이나 취업문 앞에 대기 중인 사람 모두에게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신규 채용은 극소수였기 때문에 직렬이 다름에도 우리의 취업문을 더 좁힌다는 오해가 쌓이기도 했죠. 노력하는 사람들의 자리를 뺏는 것이 평등이 아니며, 비정규직 직접고용은 취업준비생 고용에 대한 평등권 침해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취업준비생의 상실감과 이미 입사한 정규직 직원의 상대적 박탈감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업무와 관련도 없는 NCS를 공부하며 시험 결과에 따라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 공정한 절차는 맞을까요. 시험에 익숙한 우리 세대는 시험이라도 봐야 공정하다고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시험은 노력으로 취업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서류전형에는 스펙이 작용하고, 면접에는 외모, 말투 등 외형적 특성뿐만 아니라 인맥이 좌우되기도 합니다. 지인이 대기업 면접을 보는 날, 일찍 도착해서 근처 카페에 간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카페에서는 한참 면접 컨설팅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조언하는 사람의 목에는 회사 명찰이 걸려있었습니다. 아마 먼저 입사한 선배겠죠. 선배는 회사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물어보는지 자세히 알려주었죠. 지인의 귀가 좀 더 좋았다면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그걸 물어보면’ 이 얘기밖엔 들리지 않았다고 하네요. 저는 그래서 시험점수로 합격 여부가 결정되는 전문직 시험이 좋았습니다.
전문직 시험은 공정하다?
전문직 시험도 다르지 않습니다. 최근 인국공 사태와 유사한 전문직 시험 논란이 있었는데요. 바로 세무사 2차 시험 불공정 논란입니다. 공무원 경력자들이 면제되고 일반 수험생이 응시하는 세법학 1부 과목에서 과락률이 82.13%나 되었습니다. 세무공무원은 10년 이상 재직 시 세무사 1차 시험을 면제받고, 20년 이상 재직할 경우 2차 시험 4과목 중 2과목을 면제받게 되는데요. 일부 수험생들은 합격 기준인 60점을 넘기고 불합격 결과를 받기도 하여 시험 출제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세무공무원에게 유리한 시험 구조가 설정되었고 2021년 세무사 합격자 3명 중 1명이 세무공무원 출신이라는 결과를 불러왔습니다. 공정성은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포용하여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하는 개념까지 포함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경력자에게 시험을 면제해 주는 것이 공정한 것일까요, 아니면 시험은 공정해야 하므로 모든 시험을 동일하게 진행해야 하는 것일까요. 세무공무원의 경력이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으로 충분한지,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는 비정규직의 직무 경험이 정규직 전환의 자격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다면 이런 논란은 계속될 것입니다.
채용절차만 공정하면 되는 것일까?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은 2014년 제정되었습니다. 이 법은 채용 절차에서 최소한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항을 정하여 구직자의 부담을 줄이고 권익을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해당 법률에서는 거짓 채용 광고를 금지하고 있으며, 구직자의 직무 수행에 필요하지 않은 개인정보 요구 금지, 채용 일정 및 채용 과정·채용 여부 고지, 채용서류 반환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하고 있는데요. 채용 시험의 공정성에 대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선발 도구는 회사 자율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성별(남녀고용평등과 일ㆍ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적용), 연령(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적용), 장애 여부(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 적용) 등을 이유로 채용 전형에서 불이익을 주는 것은 금지되지만, 그 외 스펙(학벌, 대외활동, 인턴 경험, 해외 경험 등)을 요구하고 스펙을 고려하여 입사자를 결정하는 것은 법적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채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채용 전형의 공정성 확보는 참 어렵습니다. 학벌이 좋지 않으면 인턴과 대외활동을 경험할 수 없고, 집안 사정이 좋지 않으면 해외 경험을 하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스펙들은 공정성이 되고, 사람을 채용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됩니다. 채용에 관한 기준을 정하고 그 기준에 따라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공정한 채용의 첫걸음입니다. 그러나 제대로 일할 사람을 뽑기 위한 선발 도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스펙으로 사람을 채용한다면 절차의 공정성은 확보할 수 있을지 몰라도 채용의 타당성은 떨어질 것입니다. 채용은 지원자의 인성, 직무역량, 조직과의 적합성을 모두를 고려해야 하는 어려운 작업입니다. 사람을 뽑는 것은 우리 회사의 미래를 결정하는 일이므로 신중해야 하죠. 채용담당자들은 지원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면서, 우리 회사에 적합한 인재를 뽑아야 하는 이중 미션을 부여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