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에 다녀온 지 벌써 3개월도 더 지났다.
2024년 12월 8일 일요일.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를 택배로 부치고, 공항버스 타고 고향으로 향했다. 내가 한국을 떠날 땐 가을이었는데, 돌아오니 한 겨울이라 최대한 있는 옷을 다 껴 입었는데도 추웠다. 하와이에는 있을 만큼 있다 온 것 같아 아쉽다기보다는 빨리 고향에서 엄마밥 먹으며 편히 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유럽소녀들과의 룸쉐어가 아닌 내 방에서 편히 자고, 편히 씻고, 영어 안 써도 되고.
10시간을 비행하고 2시간 정도 공항에서 버스를 기다리다, 5시간 30분을 달려 꼭두새벽에 고향에 도착했다. 엄마가 나를 맞이해 주었고, Bryan 이 부모님께 써준 크리스마스 카드도 전달드렸다. 하와이에서 웬 이상한 놈 만나 온 거 아닌가 심각해지시면 어쩌나 했는데, 웬걸 엄마도 오랜만에 받아보는 -그것도 외국인한테- 손 편지에 엄청 기뻐했다. 하와이에 한 번 꼭 가야겠다며. 난생처음 한 달 동안 지인 한 명 없는 곳에서 지내다 고향에 돌아오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실은 해외 한 달 살기가 아니라 평생 사는 게 내 로망이었는데, 나는 아무래도 평생 한국에 살겠구나 싶었다. 고향에서의 안락한 시간은 하와이에서의 시간보다 더 빨리 흘렀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 4주 전에 소개팅한 분과의 애프터를 하고 입사 전 봐야 될 친구들을 몰아 보았다.
2024년 12월 16일 새 직장에 입사했다.
7년 만에 처음 하는 이직이라 꽤나 긴장됐다. 입사 첫날 이쁘게 해서 가고 싶었는데, 1달 전보다 5kg는 더 쪘고 얼굴은 새까매져 이게 맞나 싶었다.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을 따라 옆 부서 부서장님과 부문장님께 인사를 드렸고, PC를 세팅하며 머쓱하게 앉아 있었다. 경력직으로서 한 달 이내 할 수 있는 것은 업무보다는 친화력이라 생각했고, E인 척하며 점심/ 저녁 약속을 줄줄이 잡았다. 다행히 같은 본부에 또래가 많아, 운동도 같이하고 술잔도 부딪히며 금방 친해졌다. 그러면서 내부정보도 빨리 들을 수 있었다. 7년 동안 한 직장에서 조용히 지내다 파워 E인 척 지내다 보니 피곤하기도 했지만, 새로운 환경이 주는 프레쉬함이 나를 텐션 업 시켜주었다.
연말에 입사하여 크리스마스 저녁행사, 레이디스 디너, 새 직장 주니어들과의 저녁, 워크숍 회식 등 저녁 자리가 많았다. 그 덕에 새 직장 동료들과 빨리 친해질 수 있었지만, 주말이면 시체마냥 이틀 내내 뻗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며 MBTI가 I로 바뀐 케이스라 이직하고 적응하는 데 힘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굉장히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나는 거의 한 달 만에 친구도 사귀고 업무 적응도 대충 다 했다. 이게 7년의 짬바인가 싶었다. 내가 전 직장에서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았구나 대견하기도 했다. 근데 빨리 적응한 것의 단점이 있었다. 프레쉬함이 사라져 다시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하와이에 다시 갈 일은 없다 생각했는데, 링크드인으로 하와이 공고를 찾아보고 있었다.
현 직장의 부서는 신설 부서라 R&R이 명확지 않아 입사 전부터 고민하던 부분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부서장이 퇴사를 한단다. 사실 입사 전부터 부서장의 퇴사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 어느 정도 예방접종을 맞긴 했는데, 그래도 나를 뽑아준 사람, 나를 좋게 봐준 사람이 없어진다 하니 이제 어떡하나 싶어 잠시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근데 그동안 부서장의 퇴사 노래를 너무 많이 들어 약간 스트레스를 계속 받고 있던 터라 걍 잘됐다 싶기도 하고. 뭐 어쩌겠는가. 그분은 나를 채용해 주셨으면 됐고, 입사하고의 내 커리어패스는 내가 만들어 가는 거니까. 그래서 차라리 부서장님이 이직한 곳에서 돈도 많이 벌고 성공하시기를 바랐다. 물론, 나도 잘 자리 잡고. (아니면 또 뜨던가)
아무튼 이직 전 하와이 한 달 살기도 하고, 새 직장에서 어떻게 적응하나 걱정에 잠 못 이루던 때가 많았는데 벌써 입사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다음엔 발리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요가 자격증을 따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 그러려면 또 이직해야 되는데 과연 올해 안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 성공해서, 다음엔 발리 한 달 살기로 돌아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