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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파도처럼.

by 초록 Mar 21. 2025

내게 늘 사랑은 파도처럼 왔다 갔다.


내 룸에 Anja는 가끔 나에게 어학원 친구들 썰을 풀어줬는데, 대개 그녀의 친구가 Tinder로 남친을 사귀어 지금 하와이 다른 섬에 여행을 가있다는 둥 뭐 그런 얘기들. 해외에 나가면 외국 친구를 사귈 겸 Tinder를 많이 사용한다고, 어학원 후기를 찾다가 몇 번 보았다. 그래도 그 노무 내 선입견이 Tinder 다운로드를 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런 어플을 쓰는 사람들은 다 다른 '목적'이 있겠지. 나는 그저 '오프라인'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귈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를 가졌다.


어학원에서 오전 수업만 있는 날은 레지던스에 돌아오면 오후 12시도 채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 종일 습하고 어두컴컴 한 학원숙소에 틀어박혀 있자니, 내가 이러려고 비싼 돈 주고 이 먼 곳을 왔나 현타가 왔다.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외국 친구들도 사귀고 얘기를 많이 해야 영어가 늘 텐데. 선입견은 선입견이고 일단 Tinder를 깔았다. 대충 사진 몇 장을 올린 뒤, 나는 Weed를 싫어하며, FWB을 지양하고, 같이 커피 마시고 맛있는 거 먹을 '친구'를 찾는다는 무슨 조선시대 사람도 안 쓸 것 같은 자기소개를 써놨다.


그렇게 나도 몇 개의 하트를 날리고, 몇 개의 하트를 받으며 사진 밖에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근데 이거 안 그래도 카톡도 귀찮아하는 스타일인데 얼굴도 모르는 애들이랑 계속 연락하자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 내 숙소 근처에서 일한다는 친구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학원에서 내내 유럽사람들만 보다 보니 Tinder에서 만큼은 아시안이 좀 더 친근히 다가왔다. 종종 그가 퇴근 후 Hangout 하자고 연락이 왔는데 이미 다 씻고 누워서 나가기도 귀찮고, 약간 두렵기도 하고 그랬다.


그러다 또 오전 수업을 마치고 이른 시간부터 숙소에 누워 있는데, 이건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줄곧 연락은 왔지만 씹고 있었던 그 Tinder 남이 떠올랐고, 지금 커피 한 잔이나 점심 가능하냐고 물었다. 그는 지금 바로 가능하다고 했고, 나는 나의 안전장소인 숙소 근처 올드 펍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왜냐하면 그 올드 펍이 숙소에서 도보로 2분 컷이라 여차하면 뛰어서 튈 생각이었다. 게다가 해가 짱짱한 오후 1시에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와이키키 한 복판이니 적어도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벌렁거리는 가슴을 다독이며 약속장소로 나갔다.


근데 웬걸, 사진이랑 영 다른 사람이 그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걍 튈까? 잠시 생각했지만 뭐 내가 연애하려고 나온 것도 아니고 같이 커피 마시고 얘기하면서 영어나 쓰고 새로운 경험이나 하려고 나온 건데 그냥 만나보자 하고 다가갔다. 그의 자기소개를 제대로 읽지 않아 나는 사진만 보고 일본계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서 얘기해 보니 중화권 발음이었다. 그는 중학생 때 대만에서 하와이로 이민왔고, 나보다 한 살 많으며 이름은 Bryan이라고 했다. 우리는 대충 근처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고 크로와상 하나를 나눠 먹으며 커피를 마셨다. 막상 나와보니 결제는 어떻게 해야 되나 혼란스러웠는데 그분이 다 사주었다. 감사하게도.


보다 보니 약간 정형돈 같은 중국 아저씨스러운 푸근함에 아싸리 잘 됐다 싶었다. 나의 험난했던 이직 스토리와 매일 밤 담배 태우는 문신한 유럽소녀 얘기 등 내 걱정거리를 터놓으며 오만 얘기를 다 쏟아냈다. 하다 하다 내 전남친도 교포였다는 둥, 동네 아저씨 같이 푸근한 그의 비주얼에 30년 간 나의 역사가 그냥 줄줄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얘기하다 단어가 안 떠오르면 그는 나이스하게 기다려 주었고, 내가 틀린 단어가 있으면 영어 선생님 마냥 더 적합한 영어단어를 알려주기도 했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오히려 너드남이면 너드남이지 나쁜 놈은 아닌 것 같았고, 그와 와이키키에서 가장 유명한 아사이볼을 먹고 우린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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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를 만날 때가 하와이에서 시차적응하고 칼바람에 덜덜 떨다 감기 때문에 고생하던 때였는데, 그는 나를 위해 약국에서 종류별 감기약을 전부 사 와 내 레지던스까지 배달해 주었다. 그리고 삼쏘를 제일 좋아한다는 나를 위해 본인이 몇 번 가봤다는 삼겹살 무한리필 집에도 데려가주었다. 그때도 우버를 타자는 그의 제안에 우버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 (거의 의심병 말기 환자)에 굳이 굳이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서로의 가족사진을 보여주었는데, 그는 작년 그의 형 결혼식 사진을 보여주었다. 근데 웬걸 중국 너드남이라 생각했는데 그의 부모님 사진에서 귀티가 줄줄 흘러넘쳤다. 그렇게 또 한 번 나의 선입견이 깨졌다. 나도 참.


마침 내가 있던 기간에 미국 추수감사절이 있었고, 그는 그의 형 차를 타고 부모님 댁에서 저녁식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러고 나에게 "너도 올래? 우리 가족에게 너를 소개해줄게"라고 했다. 삼쏘 먹고 둘 다 취한 걸까. 나도 쿨하게 Okay를 외쳤다. 외국에서 지내며 현지 가족들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들의 문화와 분위기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가겠다고 답했고, 그는 바로 가족 단체방에 한국인 친구를 데려간다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가 들떠서 김치를 준비해 놓겠다고 답장하신 게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근데 마침 당일이 되니 쫄보 기질이 올라와 무척 심란해졌다. 내가 한 가족의 명절 저녁에 끼는 것이 맞는 것인가? 낄끼빠빠 못하는 거 아닌가? 또 와이키키에서 그의 형 차를 타고 같이 40분 정도를 이동해야 된다 했는데 알고 보니 그와 그의 형이 나쁜 사람이라 나를 해하면 어떡하지?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그리고 그 전날 약간의 트러블도 있고 해서 나는 결국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근데 막상 가지 않겠다고 하고 나니 나를 위해서 김치까지 사놓고 준비하신다던 어머니의 답장도 생각나고, 남의 가족식사가 장난도 아니고 이랬다 저랬다 하는 나 자신이 너무 꼴 보기 싫었다. 그리고 가족식사에 따라가지 않으면 왠지 나중에 후회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그의 형과 형수가 타고 온 차를 타고 같이 부모님 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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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과 달리 그의 부모님은 너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셨고, 중국식 샤부샤부를 함께 먹었다. 화끈하신 아버지는 나와 형수에게 항상 먼저 와인을 따라주셨고, Bryan은 항상 맛있는 음식을 내 앞에 가져다주었다. 아버님/형/Bryan 남자 셋은 주식얘기에 전념하느라 정신없었고, 어머님/형수/나 여자 셋은 한국 드라마 얘기에 푹 빠졌다. 알고 보니 형수가 한국 드라마 광팬이었고, 얼마 전에 방영한 눈물의 여왕도 다 봤다고 했다. K-콘텐츠의 위력이란.


특히, 어머님이 나를 엄청 예뻐해 주셨는데 Bryan이 내가 자쿠지를 좋아한다고 말하자 어머님은 아파트 마당에 자쿠지가 7개 있다며 나중에 자쿠지 하러 또 오라고 말씀 주셨다. 인자하신 미소로 처음 보는 한국인 여행객에게 관심 가져주시고 케어해 주시고, 3월에 있을 알래스카 가족여행에도 초대해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했다. 되려, 직전에 가족식사에 가네 마네 한 것이 너무 죄송스러웠다. 아.. 내가 걱정이 많기는 많구나. 최악의 경우는 차 안에서 형님과 Bryan에게 여권/현금 다 털리고 겁탈당하는 상상까지 했는데 무슨. 한국친구 집에 놀러 갔어도 이런 대접은 못 받았을 것이다. 집을 떠나는 순간까지 대만 부모님은 나에게 대만과자까지 손에 쥐어주셨다. 다음에 또 보자며 어머님과 포옹으로 그날을 마무리했다.


너무나 인자하신 부모님과 화기애애한 그의 가족 분위기를 직접 보고 나니, 더 이상 Tinder 남이 아니라 그에 대한 신뢰가 조금 더 생겼다. 그래서 나의 초경계령을 풀기로 마음먹었고, 그 이후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났다. 호텔에서 쉬프트 근무를 하는 그를 기다리며, 그가 퇴근하면 근처 이자카야에서 가볍게 한잔씩 하고 돌아왔다. 하와이에서도 불면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와 가볍게 한잔 하며 하루 일과를 공유하고 약간 기분 좋은 알딸딸함으로 숙면에 드는 게 기분 좋았다. 사실 아무리 치안이 좋은 와이키키 시내여도 혼자 펍을 다니기엔 홈리스들 때문에 부담이 있는데, Bryan과 다니면 그런 걱정도 없고 항상 레지던스 앞까지 안전히 데려다 주어 너무 편했다.


더 대박인 것은 하와이에 있는 동안 그의 부모님을 두 번 더 뵈었고, 하와이를 떠나기 직전엔 나에게 집밥이 아닌 레스토랑에서 대접해주고 싶다 하셔서 형님, 형수님과 다 같이 고급 한식당에서 저녁식사까지 했다. 이제 떠나면 다시 못 볼 나에게 이렇게 까지 환대하고 대접해 주시는 게 너무나도 감사해서 Chat GPT를 돌려 한자로 쓴 손편지와 와인, 꽃다발을 들고 식당에 갔다. 어머니는 편지를 보면 눈물이 날 것 같다며 나중에 보겠다고 정말 고맙다고 하셨고, 아버님은 오늘 미국주식으로 돈 많이 버셨다며 눈치 보지 말고 양껏 주문하라 하셨다. 근데.. 비싸도 너무 비쌌다. 한식당이니 한국인인 나보고 주문하라고 주문권을 위임해 주셨는데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결국 Bryan의 도움을 받아 삼겹살 몇 인분과 한국식 쏘맥이 먹고 싶다는 그의 형수를 위해 쏘맥도 하나씩 시켰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헤어질 때 어머님은 "Can I hug you?" 라고 하셨고, 가족 모두가 나를 좋아하니 한국 가서도 계속 연락하고 몸 조심하라고 연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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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가 조금만 경계를 푸니 넘치는 사랑이 내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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