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야 만 알게 되는 것들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인데도 유독 선명하게 남는 장면이 있다. 어릴 때 주말마다 이모들과 같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날은 예배가 끝나고 둘째 이모네 집에 다 같이 가는 날이었다. 친척 동생들은 일찌감치 예배가 끝나고 점심을 먹고 있었다. 메뉴는 라면이었다. 우리 엄마는 라면을 잘 끓여주는 편은 아니라 부러운 눈으로 뚫어지게 쳐다봤다. 물끄러미 바라만 보는 우릴 가엽게 여겨 한 젓가락이라도 주길 바라면서. 배가 고파도 안 고파도 라면은 늘 유혹의 음식이었다.
친척동생들이 금세 라면을 다 먹은듯하여 포기하고 일어나려던 순간. 물끄러미 바라만 보던 동생이 갑자기 목소리를 냈다.
"그걸... 마셔도 돼?"
라면 국물을 그릇 째 마시는 친척동생들의 모습. 그것에 놀란 나와 동생이었다. 라면국물을 사람이 마셔도 되는 거였다니 ….
그 장면은 사진처럼 내 기억 속에 남았다. 치킨을 먹고 뼈를 버리는 것처럼, 또 바나나를 먹고 껍질을 버리듯 우리는 늘 라면 국물을 버려왔다. 엄마는 라면 국물은 음식물 쓰레기라고 했다. 그런데 라면국물을 먹어도 되는 거였다니. 그날의 충격은 어쩐지 잊을 수가 없다.
엄마는 라면뿐만 아니라 식탁에 올라오는 모든 음식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조리했다. 소시지나 햄은 무조건 삶아서 내놓았고 그마저도 양배추쌈과 같이 먹어야만 먹을 수 있었다. 찐 양배추와 함께 브로콜리는 단골 메뉴였다.
세월이 지났어도 어린이부터 고등학생까지는 입맛이 참 쉽다. 쌀밥에 스팸 한 조각만 내어줘도 잘 먹는다. 다만 야채가 하나 둘 올라오는 순간 입맛이 똑 떨어진다. 나도 그랬다. 고기메뉴와 햄을 좋아했고 라면이나 입에 자극적인 음식들을 좋아했다. 그러니 엄마가 내놓는 밥상 앞에서는 젓가락을 옮기고 싶은 반찬이 없었다.
엄마가 가끔 고기나 햄 대신 버섯을 넣어 카레를 가득 끓여 놓곤 했는데 우린 재료가 다 보여서 먹기 싫어지는 카레가 싫었다. 그래서 우리 자매는 카레보다는 짜장을 좋아했다.
그때는 엄마가 계모인 줄만 알았다. 내가 미워서 자꾸 야채 반찬을 꺼내준다고 굳게 믿었다. 친구들은 집에서 양배추나 브로콜리를 먹을 줄도 모르던데. 내가 늘 젓가락이 오갈 데가 없어 일부러 툭 내려놓는 걸 다 알면서도 엄마는 늘 더 오랜 시간을 들여 맛없는 반찬들을 내줬다.
스물 중반이 되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아주 천천히 요리를 시작하게 됐다. 좁은 집에서 밥을 해 먹어서인지 자주 체했고 특히 고기류를 먹으면 유독 심했다. 특히 쌀밥과 함께 먹는 날에는 조금만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아 소화제를 달고 살았다.
그리고 이십 대 후반이 되면서는 내가 채식주의자가 되려나 싶을 정도로 고기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좀 더 신경 쓰고 재료 본질의 맛을 살리려다 보니 가장 좋아하는 반찬을 꼽자면 무나물이나 들기름을 무쳐댄 나물, 혹은 된장찌개, 청국장, 양배추 쌈이었다. 그것을 자각한 것은 지극히 최근 일이다.
무언가 기시감이 들기 시작했는데 그건 어릴 때 반찬을 해주던 엄마였다. 나를 미워해서 맛없는 반찬만 꺼내준다고 생각했는데 햄을 굽거나 튀기는 요리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지만 속이 편안하면서도 입맛을 살려주는 음식이 전부 어린 시절 맛없던 반찬들이었다.
가족 중에서도 내 입맛은 유독 엄마를 닮았다. 속이 불편한 날에는 양배추를 찾고 조금 비싸더라도 몸에 좋은 소금과 기름을 찾는다. 정말 바쁜 날이 아니라면 나를 위해 삶고 무칠 수 있는 요리를 즐긴다. 그런 요리가 참 재미있기도 하다.
"어쩌면 엄마도 어린 시절에는 나처럼 자극적인 음식을 좋아했을까?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속이 편한 음식을 찾게 되었던 걸까. 그때 엄마도 나처럼 알게 되었을까?"
엄마는 어땠을까. 어쩌면 엄마도 나처럼, 본인이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음식은 까맣게 잊고 어른이 된 입맛에 맞춰 밥상을 차렸을지도 모른다. 엄마도 그땐 삼십 대 초중반에 불과했고 나는 그때 그걸 알기에는 너무 어렸다.
가끔은 내가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그때로 돌아가서 엄마의 마음을 전부 이해하고 엄마가 내어 주는 반찬을 아주 맛있게 먹고 싶다. 왜 딸은 엄마의 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는 걸까? 엄마가 꺠어나면 서른 즈음의 엄마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다.
시간이 지나야 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던 마음까지도.
최근에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짐에 놀라면서도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글을 써야 하나 잠시 고민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아마 그간 썼던 몇 편의 글처럼 엄마와 저에 대한 이야기를 소소하게 풀어나가는 것을 더 의미 있게 느끼시겠죠? 읽어주셔서 늘 감사합니다.. 보내주시는 응원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힘이 됩니다.
엄마는 재활병원에 들어가고 여전히 의식은 찾지 못하고 계셔요. 저도 놓아두었던 회사일에 집중을 하다 보니 가끔은 엄마가 아프다는 것을 잠시 망각하고는 해요.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의 면회를 못 가는 날이 늘수록 엄마가 금세 일어날 거라는 기대감이 더 커지더라고요. 요즘은 엄마의 케어뿐만 아니라 저의 멘털케어에도 힘을 쓰고 있습니다. 장기전이 될 거라면 저도 건강해져야겠죠.. 오늘도 시간내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