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가라앉은 엄마, 그리고 빠져나오는 나
아직도 깊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엄마에게.
엄마! 오늘은 오랜만에 이전 직장 사람들을 만났어. 오래간만에 만나다 보니 가장 먼저 근황을 묻게 돼. 자연스레 엄마가 누워있다는 사실을 전달하면 다들 처음에는 놀라고 이어 위로를 해.
"엄마 금방 일어나실 거예요. 기도할게요"
"네가 힘을 내야 해. 밥도 잘 챙겨 먹고!"
한 달 전만 해도 쏟아지는 위로가 마음속에 안착할 새도 없이 눈물을 흘리느라 바빴는데 이젠 제법 그 위로가 익숙해졌어. 그 위로에 뭐라고 응답을 해야 할지는 여전히 어렵긴 하지만.
사실 위로라는 게 얼마나 힘들어? 특히 겪어보지 않은 상황에 대해 공감을 잘하지 못하는 나라서 공감과 위로가 얼마나 힘든지 더 잘 알기 때문에 "전 이제 괜찮아요! 엄마도 곧 일어나시겠죠? 감사해요."라는 말로 서둘러 상황을 정리하곤 해.
엄마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좀 더 일찍 알았던 사람들은 조심스레 엄마가 얼마나 호전되었는지를 물어. 엄마는 그때와 달라진 게 없는데. 그럼 그들은 응당 똑같은 말을 해.
"금방 일어나실 거예요. 기도할게요!"
"힘들다고 밥 거르면 안 돼요. 보호자가 힘을 내야 돼요"
나도 역시 똑같은 말을 해.
"네 전 괜찮아졌어요. 감사합니다"
처음에는 의사 선생님이 보수적으로 이야기한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엄마는 의식을 찾지 못했고 의사 선생님 말대로 장기전이 되어가고 있어. 난 어느새 익숙해져서 입맛도 어느 정도 돌아왔어. 내 생활도 잘 해내고 있고. 뭐랄까. 우리 둘 다 물속에 있었는데 엄마는 여전히 저 깊은 곳에 가라앉아 있는데 나 혼자 점점 얕은 물가로 빠져나오는 기분이랄까.
요즘은 이렇게 지내. 엄마는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고 있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내 주변 사람들도 조금 무뎌진 듯 해. 그러다 보니 위로는 뭐랄까. 오랜만에 얼굴 본 사람에게 핼쑥해졌다느니 좋아 보인다느니 하는 흘러가는 인사 같달까.
너무 웃겨. 사람들은 날 보고 고생하느라 핼쑥해졌대. 최근에는 나 입맛이 돌아와서 사실 살이 붙었거든.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그 위로들이 마음속에 공간을 하나하나 만들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저 스쳐 지나가.
엄마, 나는 무뎌지는 게 조금 무서워. 엄마는 그대로인데 나만 현실로 나와버린 것 같아서. 그런데 다시 엄마 곁으로 돌아가서 같이 물속으로 가라앉는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무서워. 다들 세상을 살아가는데 나만 시간이 멈춘 것만 같거든.
그래서 나는 내 현실에서 사는 걸 선택하고 싶어.
엄마가 알려줬잖아. 누구보다 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각자 행복하면 그 행복이 합쳐져서 가족의 행복이 되는 거라고. 엄마는 여전히 깊은 물속에 있는데 나 혼자 계속 물 밖으로 걸어 나가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