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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해버린 엄마가 무섭다

내 머리채를 잡고 소리를 지르는 엄마가 무서워졌다

by seon young

오늘은 오랜만에 엄마를 보고 울었다. 변한 엄마가 무서워서. 정확히 말하면 의식이 아주 조금 돌아온 엄마가 정체 모를 소리를 내지르면서 내 머리카락을 잡고 놔주지 않았다. 검사받으러 간 병원 로비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시선을 온몸으로 받았다.


"우아아아아아"


엄마는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모를 소리를 크게 내며 내 머리카락을 아주 힘차게 붙잡았다. 바로 검사를 받으러 가야 하는 순서여서 선생님들이 도와주시지 않았더라면 몇 분이고 잡혀있었을 머리채. 검사를 받고 돌아와 얌전해진 엄마의 침대를 벽에 붙이고 코너에 살짝 돌아 서 있었다. 엄마를 직면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면서 호흡이 과해지는 것 같아 마스크를 내리고 바로 유튜브에서 '마음이 편안해지는 음악'을 눌러 귀에 가져다 댔다. 너무 놀란 탓이었을까. 가벼운 공황발작이 오려고 했다. 엄마가 아프고 벌써 두 번째 증상이었다.


엄마가 무서워서 엉엉 운 건 꽤 오랜만이다. 아마 내가 중학생 때까지 매로 훈육을 받았으니 이십 년도 더 전이다. 어릴 때는 나이가 들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더 이상 엄마한테 혼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억을 할 때 즈음부터 나와 내 동생은 늘 엄마한테 호되게 혼이 났다. 편식을 한다고 안방에 들어가서 호되게 매질을 당했고 동생과 서로 나쁜 말을 한다고 입을 맞기도 했고, 한약이 뜨겁다고 난리를 치다가 약을 엎어버려 또 혼이 났던 때도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엄마한테 늘 호되게 혼이 났고 엄마가 없을 때 싸우면 서로 매질을 당할까 무서워 싸운 것을 숨기기로 약속도 했다. 그럼에도 동생이 미운 날엔 엄마한테 귀띔을 했다가 호되게 혼나는 동생을 보며 미안함에 운 적도 있었다.


어린 시절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자식을 학대하는 부모를 신고하는 SOS라는 이름의 리얼리티가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가 그 프로그램에 출연해도 곧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어린 시절 엄마는 나에게 너무너무 무서운 존재였다.




엄마가 더 이상 무섭지 않아 졌을 때, 나는 완벽주의 성향에 통제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해 있었다. 타인에게는 한 없이 관대하지만 나와 조금이라도 연관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에게는 유난히 엄격히 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통제성향이 유난히 엄격한 대상을 발견했다. 바로 어린이. 아직 어려서 침을 흘릴 수도 있고, 친구에게 음식을 나눠주지 않을 수도 있고,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해 가끔은 부모를 화나게 하는 어린이. 나는 유독 어린이가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했다.


그러면서 내 모습에서 엄마의 모습을 조금씩 발견하기 시작했다. 엄마처럼 나도 기름기가 있는 가공식품을 좋아하지만 멀리하고, 양배추쌈을 식탁에 올리며 건강을 통제하고, 간식은 먹고 싶지만 몸이 걱정되어 과자를 씹다가 뱉기도 했다. 다행히 스스로가 통제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내가 어떤 것을 명확하게 원하고 어떤 순간에 힘든지 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반면 엄마는 잘 몰랐을 거다. 엄마는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해줘도 아빠와 몰래 배달음식을 시키고, 자세를 곧게 하고 책을 눈과 멀리 떼서 보라고 해도 말을 지독하게 안 듣는 두 딸을 본인도 모르게 통제하고 있었을 것 같다. 다만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었고 당시에는 지금처럼 미디어에서 정보를 넘치게 볼 수 있는 세상도 아니었고, 스스로가 어떤 성향인지 명확하게 자각하기도 어려웠을 거고. 엄마는 그런 성향사이에서 본인의 통제를 절대 따르지 않는 제멋대로인 가족들이 생긴 것이 어쩌면 혼란스러웠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를 이해할수록, 나는 엄마를 닮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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