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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13. 2023

모든 일은 머리 감는 것에서 시작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르 위로한다 

우울은 수용성 

우울은 수용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우울할 때 세수를 하던지 샤워를 하던지 혹은 수영을 하면 우울한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는 말을 저렇게 표현한 걸 보고 정말 좋다고 느꼈다. 


비슷한 말로 '저기압일 때는 고기 앞으로' 처럼 힘들 때 고기 먹고 힘내자는 말도 좋아한다. 물론 나는 고기를 먹지는 않지만 힘든일들을 가볍고 좋아하는 일들로 떨쳐버리자는 말들에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감정이 좋다. (힘든일들을 가볍게 만들어보려는 노력 + 고기먹고 힘내서 어찌되었든 그 일을 해내야 한다는 의지 등등)  


직장 생활 동안 아침에 일어나서 기분이 좋았던 날은 얼마나 될까. 특히 K출근길을 뚫고 출근을 해야 한다면 그것도 한 시간 넘는 길을 가야 한다면 아침에 일어나는 일은 더욱 힘들고 더디다. 그렇지만 머리를 감고 나면 감정들이 조금은 정리가 되었었다. 단발머리라 아침마다 머리를 새로 감아야 했는데 머리를 감고 빗고 거울을 보면 그래 이제 하루가 또 시작되었다는 걸 내 몸이 받아들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우울증을 앓았던 특성상 아침이면 더 우울하고 기운이 없고 막연함 불안함들이 몰려든다. 그럴 때는 머리를 감았다. 시간이 허락하면 샤워를 해도 좋겠지만 그럴 정도로 여유가 있지는 않아 머리 감기로 대신했다. 머리를 감으면 우울이 조금은 씻겨 나가 아침 출근 준비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퇴근 후 샤워는 필수였다. 하루는 퇴근 후 너무 힘들고 세상 무너질 듯 힘들어서 소파에 누워서 울고 있는데 엄마가 샤워하고 맛있는 걸 먹자고 말해주었다. 몸을 겨우 일으켜 샤워를 하자 우울한 기분이 훨씬 가셨다. '그래 안되면 그만두면 되지 뭐. 죽지 말고 그냥 그만두자' 생각이 들어 떡볶이를 먹을 기운도 생겼다. (그만두진 않았지만) 


오늘도 새벽에 일어나해야 할 일들을 적었다. 너무 많아서 눌렸다.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 샤워를 하자. 밤새 더운 밤을 보내느라 축축해진 티셔츠를 갈아입고 새롭게 다시 앉아보자' 생각했다. 샤워 후 뽀송한 티셔츠를 입고 자리에 앉아 따뜻한 아몬드 밀크티를 마셨다. 이제야 좀 할만한 힘이 생겼다. 


좋아하는 파스칼의 팡세 중 그런 구절이 있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위로한다. 
사소한 일이 우리를 괴롭히기 때문에 


때론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 앞에 있지만 결국 나는 할 수 있는 일들만을 시작할 수 있다. 일들 앞에 눌릴 때 이 말을 생각한다. 그리고 사소한 일들로 힘을 얻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한다. 어쩌면 사소한 일들로 위로받을 수 있다면 크게 느껴지는 그 일도 사소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Image by StockSnap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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