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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Apr 01. 2023

칼국수와 도넛

먹고산다는 것

나에게는 일주일에 세 번 와서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헬퍼가 있다. 개도국에 살면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헬퍼의 도움을 받게 된다. 요리까지 도와주는 헬퍼들도 있다지만 헬퍼에게 한국음식까지 가르치기에는 나는 내 일이 바빠서 그렇게는 못한다.


어느 날 친정엄마와 통화하다가 너는 헬퍼도 있고 아주 편하고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실 내 몸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지낼 때가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도 빨래도 다 내가 해야 했지만 한국의 아파트 생활이 더 편했다. 그 이유는 뭘까.


물론 한국집에 비해서 크고 먼지가 상상도 못 하게 쌓이다. 요새는 사하라사막에서 넘어오는 모래 바람 때문에 하루라도 청소를 안 하면 발바닥이 시커멓게 된다. 한국집에 비해서 넓고 물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바닥 구조도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야 하는 이곳에서의 삶은 한국이라면 쓰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더 쓰게 만든다. 외식이나 배달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마저도 장티푸스나 배탈을 각오해야기도 하다.


어느 날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난생처음 레시피를 찾아 반죽을 밀고 칼국수 면을 썰었다. 육수도 직접내고 수제 칼국수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 꼬박 2시간도 넘게 걸렸다.


여기서는 사먹는 대신 매주 먹을 김치를 담가야 하고 아이의 삼시 세 끼를 (점심 도시락을 싼다...) 챙겨야 하고 나와 남편의 삼시 세 끼도 챙겨야 한다. 다행히 남편이 아침은 시리얼을 먹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다. 어찌 되었든 외식이라는 옵션도 배달이라는 옵션도 밀키트도 없는 이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수 만들어 먹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지 몰랐다. 정말 먹고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맨날  먹던 만두는 만두피부터 만들어야 하고 새우튀김이니 탕수육 같은 것은 여러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식탁은 단출하기 이를  없다. 반찬 2 올라오는 날은 한나절 부엌에서 일하는 날이다. 제육볶음을 하려면 커다란 고기 덩이 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불고기도 마찬가지이다. 마늘도  마늘은커녕  마늘도 없어서 주말마다 앉아서 마늘 까는  주요 행사다. 만둣국 하나 끓이려면 한국에서라면 사골육수팩 하나 뜯어서 끓이고 비비고 만두와 떡국떡 넣으면 끝이다. 마트에서   다진 마늘을 꺼내고 깨끗한 파를 써는  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만두피반죽부터 시작해야 한다. (설거지도 굉장한 일인데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헬퍼가 청소하는 에너지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가족은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 것이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챙겨 먹어도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퍽 다른 단출한 식탁이다. 밥과 메인반찬 하나, 그리고 김치가 끝이다. 한국에서라면 아마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맛 좋은 반찬가게에서 공수한 윤기가 흐르는 반찬에 밥 하나 하면 이미 진수성찬이었을 텐데, 내가 한 것보다 맛도 좋고.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주는 반찬들도 감사한 줄 몰랐던 내가 받는 반성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앞을 알 수 없어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재미가 있다. 때로는 지쳐 침대에 누워 배민앱에 시키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담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어가는 기쁨, 그 작고 소소한 성취감들이 이곳에서의 삶에서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안다. 내가 만든 김치와 멸치볶음, 그리고 나물들이 맛있을 때, 아이와 함께 무려 마시멜로를 만들었을 때, 주말 오후 한참 걸려 만든 잔치국수를 온 가족이 나눠먹을 때 느껴지는 편안암과 기쁨들이 친구하나 없이 거의 매일을 홀로 지내는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기쁘게 아이와 새벽부터 일어나 도넛을 튀기고 나눠 먹으며 웃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새로운 요리들이 또 그 과정이 나를 지켜줄까.


이 글은 새벽부터 일어나 도넛을 튀기다 생각난 글



Image by Oldmermaid from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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