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산다는 것
나에게는 일주일에 세 번 와서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헬퍼가 있다. 개도국에 살면 인건비가 저렴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헬퍼의 도움을 받게 된다. 요리까지 도와주는 헬퍼들도 있다지만 헬퍼에게 한국음식까지 가르치기에는 나는 내 일이 바빠서 그렇게는 못한다.
어느 날 친정엄마와 통화하다가 너는 헬퍼도 있고 아주 편하고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사실 내 몸이 그렇게 편하지는 않다. 오히려 한국에서 지낼 때가 더 편했다는 생각이 든다. 청소도 빨래도 다 내가 해야 했지만 한국의 아파트 생활이 더 편했다. 그 이유는 뭘까.
물론 한국집에 비해서 크고 먼지가 상상도 못 하게 쌓이다. 요새는 사하라사막에서 넘어오는 모래 바람 때문에 하루라도 청소를 안 하면 발바닥이 시커멓게 된다. 한국집에 비해서 넓고 물청소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바닥 구조도 여러모로 도움이 필요하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먹고사는 문제가 너무 손이 많이 간다는 것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가 해야 하는 이곳에서의 삶은 한국이라면 쓰지 않아도 되는 에너지를 더 쓰게 만든다. 외식이나 배달이 거의 불가능하고 그마저도 장티푸스나 배탈을 각오해야기도 하다.
어느 날 칼국수가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에 난생처음 레시피를 찾아 반죽을 밀고 칼국수 면을 썰었다. 육수도 직접내고 수제 칼국수를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 꼬박 2시간도 넘게 걸렸다.
여기서는 사먹는 대신 매주 먹을 김치를 담가야 하고 아이의 삼시 세 끼를 (점심 도시락을 싼다...) 챙겨야 하고 나와 남편의 삼시 세 끼도 챙겨야 한다. 다행히 남편이 아침은 시리얼을 먹고 점심은 회사에서 먹는다. 어찌 되었든 외식이라는 옵션도 배달이라는 옵션도 밀키트도 없는 이곳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다 손수 만들어 먹는 것은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지 몰랐다. 정말 먹고사는 일이 쉽지가 않다.
맨날 사 먹던 만두는 만두피부터 만들어야 하고 새우튀김이니 탕수육 같은 것은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 식탁은 단출하기 이를 때 없다. 반찬 2개 올라오는 날은 한나절 부엌에서 일하는 날이다. 제육볶음을 하려면 커다란 고기 덩이 써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고 불고기도 마찬가지이다. 마늘도 간 마늘은커녕 깐 마늘도 없어서 주말마다 앉아서 마늘 까는 게 주요 행사다. 만둣국 하나 끓이려면 한국에서라면 사골육수팩 하나 뜯어서 끓이고 비비고 만두와 떡국떡 넣으면 끝이다. 마트에서 사 온 다진 마늘을 꺼내고 깨끗한 파를 써는 게 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만두피반죽부터 시작해야 한다. (설거지도 굉장한 일인데 이 부분은 이야기하지 않기로 한다...)
그래서 헬퍼가 청소하는 에너지를 아껴주지 않는다면 아마 우리 가족은 영양실조에 걸리고 말 것이다. 사실 이렇게 열심히 챙겨 먹어도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퍽 다른 단출한 식탁이다. 밥과 메인반찬 하나, 그리고 김치가 끝이다. 한국에서라면 아마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맛 좋은 반찬가게에서 공수한 윤기가 흐르는 반찬에 밥 하나 하면 이미 진수성찬이었을 텐데, 내가 한 것보다 맛도 좋고. 시댁과 친정에서 보내주는 반찬들도 감사한 줄 몰랐던 내가 받는 반성의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앞을 알 수 없어서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 재미가 있다. 때로는 지쳐 침대에 누워 배민앱에 시키지도 못할 음식을 잔뜩 담아보기도 한다. 하지만 음식을 만들어가는 기쁨, 그 작고 소소한 성취감들이 이곳에서의 삶에서 나를 지켜준다는 것을 안다. 내가 만든 김치와 멸치볶음, 그리고 나물들이 맛있을 때, 아이와 함께 무려 마시멜로를 만들었을 때, 주말 오후 한참 걸려 만든 잔치국수를 온 가족이 나눠먹을 때 느껴지는 편안암과 기쁨들이 친구하나 없이 거의 매일을 홀로 지내는 나를 지탱해주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기쁘게 아이와 새벽부터 일어나 도넛을 튀기고 나눠 먹으며 웃을 수 있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새로운 요리들이 또 그 과정이 나를 지켜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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