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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Sep 25. 2023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산다는 것

지금 몇 개월째 전업주부로 살고 있다. 이력서 수정도 하고 영어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포트폴리오 등을 정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장 많은 일상은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하는 것이다. 집안일은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루틴을 정하고 한계를 정하는 일들이 필요했다. 냉장고 정리는 일주일에 한 번만 이불빨래는 2주에 한 번만 하고 바닥 물청소도 매일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정말 집안일만 하다가 하루가 다 간 적도 있다. 프로 주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어느 정도 나의 다음 일을 위한 준비와 균형을 맞추는 게 필요했다.


또 한글을 잘 모르는 아이의 아이의 한국적응에 온 힘을 쏟다 보니 내 이력서 준비는 뒷전이었다. 그러다 지난주 우연히 마트에서 육아휴직 중인 대학원동기를 만났다. 대학원 가까운 동네에 살다 보니 이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살고 있긴 하다. 짧게 근황을 나눴다. 대학원 동기들에게 전업주부는 육아휴직 이외에는 없었기 때문에 당연히 근황 중 하나는 "언니 어디서 일해요?"였었다. 지금은 쉬고 있다고 하니 여기저기 연구소 이야기들을 하며 다양한 옵션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생각을 해보지 않은 옵션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생각을 해본다.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 수 있을까.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살았던 시절을 기억해 본다.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물론 그때는 직장에 대학원까지 하고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려다 결국 병을 얻었다. 아이를 낳고 처음으로 회사에 출근하던 날을 기억한다. 회사에서 돌아와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다. 불리불안은 아이뿐 아니라 나도 겪었다. 출산 전 하루 12시간만 일하는 게 목표일 정도로 일에 몰입했던 나의 성과가 하락한 것은 물론이었다. 다행히 여성친화적 회사여서 그 일로 불이익을 겪지는 않았지만 내가 견딜 수 없었다. 거기에 대학원까지 더해 교수님에게 늘 사정을 이야기하며 마감일을 변경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가중시켰다. 그리고 결국 처음으로 약을 먹게 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일만 하면 되긴 하는데 전공을 살려 일을 하려면 서울에서 아마도 일을 해야 할 것이고 유연근무를 하더라도 아마 치열한 삶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새벽에 길을 나서 서울과 이곳을 오가고 아이가 아프면 이리저리 발을 동동 구르며 울며 회의하고 일을 마무리할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 일을 하고 밤늦게 아이를 재우고 커피를 타 랩탑을 켜겠지. 귀중한 휴가들은 아이의 병원, 행사들을 위해 아껴두며 아파도 타이레놀을 삼키며 일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그런 각오가 되어 있을까. 카메룬에서는 100% 재택근무에 헬퍼가 있어서 비교적 수월하게 워킹맘으로 지낼 수 있었다. 시차가 있었던 것도 새벽근무는 힘들었지만 회의 시간을 새벽으로 몰면 오히려 낮동안에는 일만 할 수 있어서 아이 픽업 등이 수월했다. 학원이라는 옵션이 없었던 것,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 학교가 아침 일찍 시작해 오후 늦게 마쳤던 것 등 모두 워킹맘으로 일하는데 최적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오후에 회의가 더 많을 것이고 소통이 더 많아야 할 텐데, 아이는 1-2시면 학교가 끝나도 돌아와 학원을 가고 간식을 먹고 숙제를 해야 한다. 한번 일이 있어서 숙제를 저녁 먹고 했더니 정말 말 그대로 울면서 숙제를 해야만 했었다. 아이와 한참을 씨름하고 숙제를 마치고 나서는 무알콜 맥주하나를 뜯을 수밖에 없었다. 안 먹던 과자도 곁들여 말이다. 어쩌면 학원에 노트북을 들고 가서 일을 하고 회의하며 아이 숙제를 봐주는 숨 가쁜 일상이 시작될 것이다. 결국 번역이나 파트타임밖에는 답이 없을까 여전히 고민이다.


남편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 부부가 오래도록 함께 결정한 부분이다. 한 명은 자리를 지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고 보다 유연한 조건으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간의 다양한 경험으로 영어강사든 번역이든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남편보다는 내쪽이다. 개인적으로 아이가 어린 시절에는 육아가 직장보다 훨씬 힘들었지만 조금 더 지나면 일이 더 힘들어지기도 했다. 아니 어떤 일이냐에 따라 그 경중을 가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만두기 전 회사는 나의 정체성이 흔들릴 만큼 고통스럽고 힘들었다. 어떤 일이 더 힘드냐는 절대적으로 결론 내릴 수 없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둘 다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일이다. 다만 나는 언제든 힘들면 그만둘 수 있지만 남편은 가정을 위해 그럴 수 없다는 것 이 차이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서로 얼마나 서로를 존중하고 도우려고 하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대부분은 서로의 일을 경시하는데서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남편과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잘 이야기하고 도우며 잘 살고 있으니 걱정 마시라는 말이 길어졌다.


한 가지 결정은 나는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다시 살아보기로 한 것이겠다.

오늘도 원서와 자기소개서를 다시 쓰고 고쳤다. 이번주에는 몇 군데 원서를 넣을 예정이다. 유연근무가 가능한 쪽으로 알아보고 있다. 번역도 다시 시작할 준비를 하고 있다. 내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여기까지 이다. 기회가 열리면 그때 또 고민하고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 가지 결정은 나는 한국에서 워킹맘으로 다시 살아보기로 한 것이겠다. 사실 워킹맘으로 사는 것은 넘치도록 많은 글감이 쏟아지는 경험이다. 카메룬에서 글감들이 쏟아진 것들은 다 워킹맘이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나의 글들은 워킹맘으로 살아가며 일에 대해 삶에 대해 아이에 대한 것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일도 시작해야 워킹맘이 되니.


지금은 새벽에 일어나 나만의 모닝루틴을 한다. 이후에 아이를 깨우고 밥을 먹이고 학교에 데려다준다. 그리고 도서관으로 향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집으로 돌아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데려갈 준비를 한다. 아이와 학원에 가고 간식도 사 먹고 돌아와 숙제도 하고 같이 저녁을 먹는다. 가끔 시켜 먹기도 한다. 아이 목욕을 시키고 같이 책 읽으며 침대를 뒹굴 거리다 잠이 든다. 그전까지는 지금의 평화로운 일상을 즐겨보려 한다. 언젠가 숨 가쁘게 바쁜 날, 오늘을 기억하며 "그때 좋았지"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사진: Unsplash의 Brian Wangenhe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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