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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Oct 05. 2023

차가운 바람이 주는 위로

그래도 계절은 변하고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이 드디어 끝났다. 추석 전까지만 해도 여전히 반팔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부르는 날씨였는데 추석 중간즘부터 날이 꽤나 쌀쌀해졌다. (그 바람에 혹독한 감기몸살을 앓기는 했다) 좋아하는 니트를 꺼내고 텀블러의 빨대를 꺼내 씻어서 넣어두었다. 아이의 가을 옷과 재킷들을 손이 잘 가는 곳으로 옮기고 여름이불을 빨아서 넣어놓는다. 양말을 꺼내 신고 컨버스를 꺼냈다. 


더운 여름 한국에 들어와 끝날 것 같지 않은 여름을 보내며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만 갔다. 아이를 위해 가족을 위해 힘을 내 몸을 일으키지만 갈바를 알지 못하는 아득한 느낌이 싫었다. 이력서를 정리하다 제멋대로인 나의 이력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고 싶어질 때도 많다. 이 시간들이 끝이 있을까. 


하지만 계절은 어느새 변하고 나뭇잎은 떨어지고 공기는 차갑게 나를 위로한다. 영원한 시간은 없어. 이 시간도 다 지나가지.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렴. 다 잘될 거야라는 친구와 가족들의 위로도 힘없이 떨어지는 종이비행기 같은 시간 속에 확실히 변하는 계절이 내게 말을 건네준다. 


학교 가며 늘 울던 아이는 눈물을 그치고 옷을 입고 신나게 집을 나선다. 한 줄도 쓸 수 없었던 자기소개서를 채워간다. 먹던 약이 줄어간다. 종종 차오르던 분노대신 걸음 수를 늘렸다. 동네 단골 커피집이 생겼고 도서관 카드를 만들어 아이 책을 빌려온다. 모든 것을 세세하게 걱정해야 하나도 빠짐없이 다 잘될 것 같은 강박은 그저 햇살과 바람 속에 색이 변하는 벚나무 잎들과 함께 조금씩 색을 바란다. 


그렇게 계절은 변하고 언젠가 이 시간들이 내 삶에 어떤 기억으로 남을지 이제야 조금 기대가 된다.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내 삶이 결코 낭비가 아니었다는 걸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언젠가 언젠가는 알게 되리라는 희망이 찬 바람과 함께 실려온다.


사진: Unsplash의 Matt Dun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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