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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Oct 04. 2023

아메리카노의 위로

따뜻하든 차갑든 

평일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한다. 특히 평일 아침 시간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한다는 중요한 미션이 있다. 새벽에 일어나 1-2시간 모닝 루틴을 한다. 이후에 식기세척기를 정리하고 빨래를 돌리고 아이를 깨운다. 비몽사몽 하는 아이에게 아침을 준비해 주고 날씨를 확인한다. 아이가 입을 옷을 골라주고 내가 먹을 빵을 데운다. 아이와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준비를 한다. 아이의 책가방을 짊어매고 내 에코백에는 노트북을 챙겨 넣고 함께 집을 나선다. 


이제 긴바지에 긴팔이 아니면 추운 날씨가 되었다. 얼굴이 시리다는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학교에 데려다준다. 실내화를 갈아 신고 들어가는 아이의 등에 매인 커다란 가방이 안쓰럽기도 귀엽기도 하다. 길고 긴 연휴 내내 몸살로 누워 있다가 아이 학교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비타민과 진통제를 잔뜩 먹고 힘을 냈다. 그리고 나는 동네 카페로 향한다. 그곳에는 드디어 혼자 있을 시간이 왔다. 


여름에는 아이스, 가을부터는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한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15분, 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언제 아이를 픽업하는지 숙제는 했는지 이력서는 어디를 수정해야 하는지 어디에 공고가 떴는지 등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하루 중 유일하게 쉴 수 있는 15분은 그냥 가만히 있어본다. 휴대폰도 잘 보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본다. 


매일 몰아치는 현실의 걱정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순간들이 몰려온다. 노트북은 골골거리고 핸드폰은 종종 먹통이 된다. 예산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가고 일을 해야 하는 시간이 찾아오고 있다. 아이의 사교육비는 생각보다 많이 들고 우리의 식비도 관리비도 생각보다 많다. 평범한 삶을 영위하는데 드는 비용은 늘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다. 그저 잘 될 거야라고 하기엔 이제는 조금 더 옷매무새를 고치고 고개를 당기고 앞을 똑바로 바라봐야 한다. 


곧 아이 하교시간이 돌아오고 아이를 픽업해서 학원을 데려가고 간식과 저녁을 챙겨주고 숙제를 봐주고 씻기고 책을 읽어주고 재워주고 나면 어느덧 밤이 된다. 함께 잠이 들고 새벽이 되면 다시 눈을 뜬다. 내게 주어진 삶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다. 언젠가 다 이해될 거라 믿는다. 


천천히 커피를 마신다.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온몸에 퍼진다. 여름에는 땀을 식혀주었고 지금은 몸을 따뜻하게 해 준다. 가을 냄새가 바람에 섞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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