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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07. 2023

햇살, 하늘, 그리고 구름이 나를 치유했지

집 이야기: 케냐 나이로비 

케냐에서 지낸 기간은 그곳에서 지낼 때도 또 지금 돌아오고 나서도 정말 좋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서 지내고 싶은 곳, 케냐 나이로비. 그리고 우리 집. 방이 5개 있는 커다란 2층 집이었다. 같은 모양의 집들이 수백 개 있는 커다란 컴파운드 안에 있는 곳이었다. 우리 같은 외국인들도 또 케냐 사람들도 많이 살고 있고 시큐리티들이 많이 있어서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자그마한 마당이 있었다. 


나이로비의 하늘은 한국보다 낮았다. 해발고도가 높았기 때문에 하늘이 더 가까이 있었다. 손에 잡힐 듯이 가까운 구름들이 떠다녔다. 그리고 적도 근처라 1년 중 10개월은 맑은 햇살이 비쳤다. 그리고 그 아래 우리 가족이 지냈다. 


아이는 2돌이 되기 전에 나이로비에 도착했다. 2돌 생일을 조촐하게 나이로비에서 나와 단둘이 보냈었다. (남편은 출장 중) 그 아이가 6살이 되어 나이로비를 떠났다. 지난 사진을 보면 큰 아이인 줄 알았는데 정말 아기였을 때부터 외국생활, 그것도 개도국 생활을 했구나 싶어 짠하기도 하면서 넓은 마당에서 고양이들과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 아이의 유년시절이 부럽기도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이 쉽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정전과 단수가 정말 1-2주 간격으로 찾아왔고 5일 정도 단수가 되었을 때는 정말 진심으로 미쳐버리는 줄 알았다. 인간의 삶을 영위하는데 물과 전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꺠달을 수 있었다. 또 친구도 없었고 갈 수 있는 곳에도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나는 완전한 타인이 되어 놀라운 자유를 맛보게 되었다. 외국사는 것이 잘 맞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한국은 너무도 편리하고 좋은 곳이지만 너무도 많은 것들이 촘촘하게 얽혀있어서 운신의 폭이 좁다. 말도 행동도 조심해야 하는 것이 많다. 나이로비에서 막 산다는 게 아니라 아예 만날 사람들이 없기 때문에 나는 오롯이 나와 가족들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사회적 이벤트들이 적다는 것이 생각보다 더 위로와 평안을 주었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원가족과 멀리 떨어진 곳이었다. 그것이 우리들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우리들의 원가족은 물론 우리들을 최선을 다해 돌보아주셨고 사랑해 주셨지만 그래도 상처가 남게 마련이다. 한국에서의 켜켜이 묵혀진 시간들에 대해 회고하며 보내 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커다란 집이 그리고 이 햇살이 우리에게 그렇게 위로가 될지 지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나이로비의 집은 우리 3 가족이 살기에는 무척 큰 집이었다. 천장이 높아서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방이 많아서 우리 가족은 각자 방을 하나 가질 수 있었다. 결혼 후, 아니 20살 이후 처음으로 내 방이 다시 생겼다. 20살 대학교 기숙사로 떠난 후로 오래도록 방이 없던 사연은 구구절절하니 다음기회에 하기로 한다. 처음으로 내 방에 다시 책상을 놓고 침대를 두고 나만의 옷장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평화를 되찾았다. 


한국에서 마지못해 몸을 일으켜 아파트 창문 사이로 밖을 내다 보고 아침을 꾸역꾸역 먹고 노트북을 펼치던 때와는 달랐다.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대신 달콤한 공기를 들이마시면 저절로 감사가 나왔다. 한국살이가 힘든 건 어쩌면 편리한 아파트 생활과 도시생활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새벽에 눈을 뜨면 마당에 나간다. 커피 한잔을 내려서 정원 의자에 앉아 하늘을 본다. 푸른 하늘이 밝아오는 것을 보며 발 끝을 스치는 고양이들과 인사를 한다. 바나나 나무 사이로 햇살이 비추고 아침이 찾아온다. 개도국의 아침은 대부분 일찍 시작을 한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가 들리고 아침이 찾아오면 충만한 기쁨이 가득 찼다. 언젠가 나이로비에 다시 돌아가게 된다면 가장 먼저 아침 일찍 일어나 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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