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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05. 2023

21세기 가내수공업

뭐든 합니다. 뭐든. 

요즘 집에서 재택근무로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하고 있다. 노트북을 이용해서 하는 일들을 닥치는 대로 받아서 하고 있다. 링크드인 혹은 번역 잡 포탈에 올라오는 공고를 통해서 알 수 있는 모든 일들에 원서를 내고 있다. 여기저기 프로필을 올려놨더니 정말 아무 일이나 들어와서 다 하고 있다. 약간의 테스트를 거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대부분 어느 정도 수준의 작업물을 낼 수 있는 일들이라 열심히 하고 있다. 


아이 학원에도 노트북을 들고 다니며 피드백도 반영하고 틈틈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이것이 21세기 가내수공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오징어채 찢는 부업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뭐 인형 눈 붙이는 알바 같은 것들도 있다는데 바닷가 마을에서는 오징어채 찢는 부업이 가장 많았다. 이모가 오징어채를 찢고 있으면 몰래 하나 먹고 도망가다가 혼나기도 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집에서 노트북을 가열하게 두드리며 일을 하고 있다. 짧으면 하루면 끝나는 일도 있고 길게 2주 정도 걸리는 프로젝트 들도 있다. 페이는 단어당 0.04달러부터 시간당 20불까지 다양하다. 4대 보험은 되지 않고 수입은 늘 들쑥날쑥 하지만 그래도 일을 할 수 있고 수입이 생긴다는 것에 감사하며 열심히 일하고 있다. 그중 몇 가지를 소개해보려 한다. 


1. 번역: 역시 재택근무의 클래식은 번역이다. 영한, 한영을 다 하고 있다. 네이버 사전과 그래머리, 한글 맞춤법 사이트를 옆에 켜두고 맹렬하게 번역을 한다. 사실 한영 번역은 잘하지 않는다. 번역은 기본적으로 도착어에 원어민이 하는 것이 맞다. 원어민이냐 아니냐는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아주 높은 수준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것과 원어민, 모국어의 차이는 거의 하늘과 땅 차이이다. 하지만 한국어를 잘하는 영어번역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돌아 돌아 나에게까지 납기가 급한 일들이 들어올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대부분 가격이 좀 높게 들어온다. 그래서 거북목이 되도록 두드리고 그래머리 돌려가며 열심히 작업을 해서 납기 하고는 한다. 


2. AI트레이닝: 이건 최근에 생긴 일인데 AI 트레이닝을 하는 일이다. 자세한 내용은 비밀유지각서를 썼기 때문에 말할 수 없지만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ChatGPT가 바꾸어놓은 세상에 숟가락 좀 얻고 돈을 벌고 있다. 한국어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과 뭔가를 평가하는 일은 재미가 있다는 걸 동시에 느끼고 있다. 신기한 세상이다. 


3. 번역리뷰: 번역한 것을 리뷰하는 일들도 하고 있다. 이에 의외로 번역보다 더 어렵다. 다른 사람이 번역한 것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고 그에 대한 코멘트를 영어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일단 한국어 맞춤법 등에 정통해야 하고 해당 분야의 지식도 있어야 하는 데다 영작에도 오류가 없어야 해서 여러모로 신경 쓸 일이 많다. 다른 사람 번역은 어떻게 하는지 알 수 있는 것 이외에는 고달픈 일 중에 하나이다. 그래도 들어오면 감사히 하고 있다. 


이 중에 집필활동은 없다는 게 조금 아쉽다. 기고나 어딘가에 글을 납품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다가도 이전에 기고 몇 번 할 때 하루종일 정신이 탈탈 털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직은 이렇게 편하게 브런치에 글 쓰는 게 좋다. 유료 연재하는 플랫폼에서도 제안이 종종 들어오는데 다 거절하는 것은 자유롭게 글 쓸 수 있는 게 가장 좋기 때문이다. 읽어주시는 분들도 더 편할 거라 생각한다. 


오늘도 나는 설거지는 미뤄두고 책상에 앉아 커피와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가열하게 노트북을 두드린다. 구글 서치도 하고 맞춤법 검사도 하며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낸다. 그래도 이렇게 일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스킬들이 나를 구원한다. 오래전부터 써온 구글과 구글독스나 스프레드 시트들을 다룰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고 있다. 그래머리니 에디켓이니 다양한 서비스를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구입한 성능 좋은 노트북은 가장 잘 산 것 중의 하나이다. 오늘도 노동자 서 씨는 열심히 가내수공업을 하며 하루를 알차게 보내보려 한다. 삶의 모든 현장에서 애쓰는 모두에게 건승을 빈다. 


사진: Unsplash의 Nick Karvounis



어제 글을 못 올려서 오늘은 2개 올려요!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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