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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박하 Dec 05. 2023

화장대보다 책상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

살면서 가장 중요한 하드웨어가 뭐냐고 묻는다면 바로 책상이라고 말하겠다. 초등학교 1학년 처음으로 책상을 가지게 된 이후로 책상은 나에게 가장 소중한 가구가 되었다. 다 같이 쓰는 공부용 넓은 식탁이 있어도 나에게는 나만의 책상이 정말 중요하다. 특히 다른 사람과 같이 쓰지 않는 나 혼자만의 책상이 있어야 한다.


신혼 초 거실을 서재로 만들고 남편과 같이 쓰는 커다란 책상을 샀었다. 그리고 저녁이면 나란히 앉아서 책도 읽고 일도 하고 했었다. 그런데 나는 자꾸 책을 들고 안방 침대로 가게 되었다. 왠지 불안했다.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가 아니었다. 외부 카페나 도서관에서 잘 있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완전한 타인과 함께 있는 것과 아는 사람이 같이 있는 것은 매우 달랐다.


몇 개월의 방황 끝에 아주 작은 책상을 무인양품에서 구입해서 안방에 두었다. 그제야 나에게는 평안이 찾아왔다. 아주 작은 책상에서 논문도 쓰고 드라마도 보면서 평안을 되찾을 수 있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다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읽고 알게 되었다. 누구나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나에게 가장 작은 자기만의 방은 바로 책상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만의 방이 없어도 나에게 나만의 책상이 있다면 그곳이 나에게 방이 되어주었다. 작은 서랍도 있다면 금상첨화이다. 그곳에 노트와 펜을 놓고 나만의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


처음으로 우울증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만의 책상이 없었을 때였다. 아이를 낳고 일을 하며 온통 집은 아이 물건으로 가득했고 나만의 방은커녕 혼자 쓸 수 있는 책상조차 없었다. 나는 늘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어디에도 내 삶이 없었다. 그렇게 방황하고 마음이 떠돌다 병을 얻었다. 그 후로 알게 되었다. 나에게 얼마나 나만의 책상과 공간이 필요한지 말이다. 카메룬에서는 방이 두 개라서 하나는 침실 하나는 책상 두 개를 넣어 일하는 방을 만들었다가 하루 만에 짐을 다 싸들고 거실로 나왔다. 거실에 나만의 책상을 만들었다. 그제야 나는 안정을 찾았다.


그래서 언제나 화장대는 사지 않아도 책상은 어떻게든 사서 집에 넣었다. 케냐에서도 카메룬에서도 그리고 이제 다시 새로운 이 집에서도 방을 정리하고 어떻게는 내 방을 만들고 책상을 사서 넣었다. 화장품은 화장실이나 옷장 안에 넣어도 상관 없었다. 책상이 중요했다. 책상의 퀄리티는 중요하지 않다. 검은색이든 하얀색이든 원목이든 상관없다. 그저 내 한 몸 앉을자리만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 나의 책상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다.



지금은 아이의 물건이 많이 있긴 하지만 나만의 방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책상이 있다. 책을 넣어둘 책장도 있고 거의 완벽한 홈오피스를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떠 내방으로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모른다. 방에 작은 침대도 하나 놓고 싶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 참고 있다.


누구나 혼자만의 쉴 공간, 마음을 둘 공간이 필요하다. 방에만 머물며 세상과 단절하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나되게 하는 시간 혼자만의 시간 자신을 돌보는 시간 그 시간과 공간이 우리를 살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오늘도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집안일은 잠시 미루고 혼자 글 쓰고 생각을 정리한다. 나의 아담한 책상에 감사하며 또 글을 쓰고 일을 시작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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