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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래동화는 위험해

충격과 공포의 별주부전을 읽고

by 서박하

시댁에 방문했다. 시댁에는 몇 가지 어린이책들이 있어서 자기 전에 읽어주곤 하는데 이번엔 아이가 별주부전 책을 꺼내왔다. 토끼와 거북이가 표지에 있으니 가져온듯했다. 아무 생각 없이 읽어주기 시작하는데 처음부터 당혹스러운 내용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용왕님이 아픈데 토끼 간을 먹어야 하니 잡아오라고 했다.


"토끼를 잡아요? 간이 뭐예요?"

"어... 그게 토끼 뱃속에 있는 건데..."

"그럼 토끼 배에서 이렇게~ (손으로 꺼내는 시늉을 하며) 꺼내는 거예요?"

"어... "


간신히 자라가 육지로 올라왔는데 토끼에게 거짓말을 하며 용궁으로 데려가는 거였다.


"이제 토끼는 거북이랑 놀러 가는 거예요?"

"어... 놀러 간다고 그러네~"


거기다가 이제는 토끼 배를 가른다고... 중간에 책을 그만 읽고 바꾸려고 했는데 끝까지 읽어달라며 떼를 써서 끝까지 읽었다. 우여곡절 끝에 토끼가 다시 육지로 돌아와서 도망가고 나서 자라의 행동이 가관이었다. 분명히 내가 어릴 때 읽었을 때에는 울고 있는 자라에게 산신령이 나타나서 토끼 간 대신에 무슨 환을 준다는 거였는데 자라가 바위에서 뛰어내려 투신자살을 해버렸다. (...) 그래서 용왕이 성대하게 장례를 치러주고 용왕은 병을 받아들이고 죽는다. (...) 어떻게 끝냈는지 기억도 안 날 만큼 당혹스러운 내용이었다.


Photo by Sandy Millar on Unsplash


아이를 재우고 나서 전래동화 전집을 한 권씩 꺼내 읽어보았다. 집에서 놀면서 애를 많이 낳은 흥부나, 제비다리를 부러뜨리는 놀부라던가. 청부살해, 복수 등이 난무하는 장화홍련, 틈만 나면 나타나 사람들을 잡아먹는 호랑이 등등 전집을 통째로 집으로 들고 와 재활용 통에 넣어버렸다. 나는 늘 균형 잡힌 아이로 자라는 마음에 백설공주나 잠자는 숲 속의 공주 같은 것만 읽어주지 않았는데 전래동화가 이렇게 충격적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여기저기서 얻어온 책 중에 전래동화는 없어서 아직 읽어 줄 기회가 없었다는 게 새삼 다행스러웠다. 어릴 때 나는 어떻게 이런 걸 읽었나. 그리고 이런 내용은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공부가 필요하다) 빨간 구두를 신었다는 이유로 발을 자를 때까지 춤을 추었던 빨간 구두 이야기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림형제 동화 원작을 읽고 받은 충격도 생생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스펀지 같은지 깜짝 놀랄 때가 많이 있다. 옥토넛을 보고 나서는 늘 바다생물들 구조하는 놀이만 하더니 페파 피그를 보고 나서는 차마 시며 놀기도 추가가 되었다. 맥스&루비를 영어로 보고 나서는 영어로 말을 조잘대기 시작했고 코코 멜론을 보고 나서는 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한다. 괴물이 나오는 책을 한번 보더니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밤에 장롱에서 괴물이 나온다며 무섭다고 했다. 이제는 나와 친정엄마가 하는 이야기를 그대로 듣고 꼭 모르는 단어를 물어보곤 한다.


그렇기에 아이에게 들려주고 보여주는 세상에 더더욱 신경을 쓰게 된다. 언젠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세상으로 걸어가겠지만 그전까지는 좋은 습관을 기르고 좋은 인성을 갖추도록 도와주고 싶다. 밤늦게 찾아온 집을 잃은 동물가족을 도와주는 곰 아저씨 이야기라던가 빨간 풍선과의 우정 이야기라던가. 그런 따뜻한 이야기들은 읽어주는 나조차도 마음 따뜻하게 해 준다. 언젠가 읽어주려고 잘 보관해둔 내가 좋아했던 이야기책들도 가득하다.


별주부전 이야기를 친정엄마에게 해주었더니 어릴 적 우리 남매의 책장에서 이상한 책들은 어느 날인가 다 골라내어 버렸다는 친정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 부모님 마음은 다 똑같구나. 좋은 세계관을 가지고 처음 만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먼저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무튼, 전래동화는 위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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