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보다 페파 피그
내 아이에게 위인전을 읽히지 않는 이유
어린 시절 책장 가득했던 위인전을 읽고 정형화된 독후감을 쓰곤 했다. 위인전에 나와있는 사람들은 다 훌륭한 사람들이구나-생각했다. 그리고 30대가 넘어 다양한 시각의 역사책을 읽으며 느낀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알고 있던 위인은 위인이 아니었다. '위인'이라는 말조차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역사 속에서, 진실 속에서 정말 모든 면에 훌륭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책의 한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것처럼,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적당히 좋은 점만 부각한 위인전은 위험하기 이를 때 없는 것이다. 심지어 실수도 미화되고 역사와 다른 사실들이 전해지기도 한다. 어릴 적 읽은 위인전집 중 기억나는 것이 몇 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차라리 페파 피그나 아기돼지 삼 형제가 더 아이들에게 유익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다정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고 집을 튼튼하게 짓는 게 좋다는 걸 알려주는 책 (아기돼지 삼 형제는 이 외에도 다른 면들을 좀 봐야 하지만) 이 역사 속에서 다양한 평가를 받는 인물에 대해 마냥 좋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훨씬 훌륭하다. 아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어려움을 딛고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예의 바르게 이야기하는 것, 좋은 습관을 기르는 것, 질서를 지키는 것과 같은 세상을 살아가며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에 대한 책들이 훨씬 더 중요하다.
역사를 배우고 난 후 그 후에 흥미로운 인물이 있다면 평전을 찾아 읽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자서전, 자신의 경험에 기반한 자기 계발서 등은 특히나 문제점들이 많다. 특히 자기 계발서 중 자신의 성공을 기반으로 이야기하는 경우, 대부분 자신의 커리어의 정점에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아주 괴랄한 내용들, 일반화하기 절대 어려운 일들이 아무렇지 않게 적혀있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그런 점이 너무 재미있어서 종종 자기 계발서를 읽곤 한다)
앞서 말했던 세상을 살아가면 필요한 기본적인 소양들, 타인을 배려하는 법, 성실하게 맡은 일을 해내는 인내심과 끈기, 예의 바르게 부탁하는 방법,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이러한 소양들을 어릴 때부터 익힌다면 이런 것들의 가치들이 '성공'이라는 가치보다 더 중요하게 아이들에게 전해진다면 그 누구의 판단도 없는 자신만의 '성공'을 이뤄내고 삶을 살아가는데 전혀 문제가 없을 것이다. 나중에 커서 '자존감을 높이는 법'이나 '좋은 습관 만들기'등과 같은 책들은 보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른 어떤 것보다 어떤 지식들보다 이런 소양들이 중요하다.
"남들을 이길 수만 있다면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아도 괜찮아. 성공할 수 있다면 내 몸과 마음을 다 갈아도 괜찮아. 성공하면 가족도 친구도 다 돌아오는 거야. 나만 아니면 괜찮아. 돈이 최고지. 내가 잘 사는 게 최우선이야"
이런 가치들로 가득해진 세상. 이런 가치들이 선善으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어릴 때 학업성취라는 목적, 더 나아가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에 간다는 목표 더 위에 더 나은 인간이 되게 하기 위해 책을 골라주고 예의를 가르치는 일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아주 잠깐 방심한 사이에도 금세 그런 생각들이 마음에 들어와 아이에게 워크북 하나라도 더 시키려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주어진 음식을 감사히 맛있게 먹는 것, 친구와 놀며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것을 배우는 것, 사랑한다고 서로 말하는 것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노력한다. 결국 마지막에 우리에게 남는 것은 성공보다 사랑과 배려일 것이라 나는 굳게 믿는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될 수 있도록 나부터라도 노력하고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