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사랑이라고들 한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만큼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고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지금도 분명 친정부모님이 나를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나의 가족과 나자신을 더 위하고 사랑한다. 그렇게 사랑은 아래로 흐르는 물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작은 아이의 사랑은 비누방울처럼 바람을 타고 올라와 우리들을 치유한다.
남편이 해외파견을 나가고 혼자 지내기 힘들어 친정부모님댁에서 신세를 진지 1년 반정도 되가고 있다. 가장 큰 안방을 차지하고 온집을 장난감으로 가득채우는 민폐를 끼치며 말이다. 나는 5년전 결혼하며 집을 떠났다가 더 큰 짐과 아이하나를 더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와 나의 형제들은 매우 엄격한 부모님의 훈육아래에서 자랐다. 그시절 많은 가정이 그랬을 것이다. 밥속에 들어있는 콩하나 뱉어낼 수 없었고 추운겨울 오빠와 장난을 치다 집에서 쫒겨나 벌을 서기도 했다. 아빠가 들어오는 것이 무서워서 대문소리가 들리면 얼른 불을 끄고 누워 잠든척 했다.
아빠는 남자형제들 사이 유일한 딸인 내가 애교가 없다며 늘 말씀하셨다. 엄한 집안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회사 부하직원같은 딸이 되고 말았다. 그저 맡은 일들을 잘 해내고 혼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아빠가 집에 돌아오는 소리는 39살이 된 지금도 떨린다.
하지만 나의 아이, 하늘이는 다르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단 한번도 혼나본적 없고 체벌을 받은 적도 없다. 아빠는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해서 몇시간이고 놀아준다. 사랑을 준다. 그리고 그 사랑을 아는 하늘이는 할아버지가 돌아오는 문소리가 들리면 커다란 웃음소리를 내며 뛰어가 안긴다. 그리고 거침없이 말한다. 보고싶었다고 가지말라고 사랑한다고 좋아한다고. 그리고 작은 팔을 내밀어 할아버지를 안는다.
그리고 화장실앞에 서서 할머니가 나오길 기다리며 작은 팔로 힘껏 안아준다. 1분도 채 들어가 있지 않았는데 그사이에 할머니가 보고싶었다며 안긴다. 그리고 할머니의 두뺨을 작고 통통한 손으로 쓰다듬는다. 사랑을 가득 담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외출하시면 바지가랑이를 붙잡고 가지말라고 말한다. 집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있는게 좋다고 투정부리며 있는 힘껏 사랑을 불어올린다.
그 사랑은 방을 방울 피어올라 늙은 엄마와 아빠의 마음을 치유한다.
아빠는 종종 하늘이와 놀아주다가 '할아버지가-' 대신에 '아빠가-'라고 말한다.
아주 어린딸을 30여년 만에 다시 품에 안은 것이다.
엄마는 말한다. '하늘이가 저렇게 작은데, 너희가 클때는 저렇게 작은 줄 몰랐어. 저렇게 작은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텐데. 미안해'
어릴적 우리 삼남매에게 준 적없는 사랑을 손녀딸에게 주며 엄마와 아빠는 오래된 상처와 아쉬움들을 치유한다. 3살하고 6개월 정도 살아온 작은 아이의 커다란 사랑이 온 식구들의 마음을 치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