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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엄마의 성적표가 아니다

충치5개, 치과, 그리고 50만원

by 서박하
"충치가 5개 있네요. 아래 어금니 2개는 상태가 심각하네요. 치료를 해봐야 알겠지만 견적은 대략 00만 원 정도 예상됩니다. 치료를 진행하시겠나요?"


어젯밤, 아이 양치를 시켜주다 아래 어금니에 약간 검은 줄이 보여 핸드폰 손전등으로 몇 번이고 다시 보다가 치과에 방문했다. 아이는 페파 피그처럼 이가 얼마나 하얗고 깨끗한지만 확인하러 온다는 말에 신나게 따라왔는데 충치가 있다는 말에 내 손을 붙잡고 놓지를 않았다. 소뿔도 단김에 빼라고 온 김에 가장 심각한 어금니를 하나 치료하기로 했다.


분명 레진으로 메우기만 하면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충치가 깊어서 신경치료를 하고 뭘 씌워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비용을 줄줄 말하며 괜찮겠냐고 했다. 당황한 나는 아무거나 제일 좋고 빠른 것으로 해달라고 했다. 웃음가스를 들이키며 눈으로 흐르는 눈물을 겨우 참고 있는 아이는 결국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발버둥 치는 아이를 침대 밴드로 묶고 머리를 고정했다. 아이는 어쩔 줄 모르고 소리를 질렀다.


나는 아이의 손을 붙들고 계속 소리쳤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치료를 마치고 눈물범벅이 된 아이를 품에 앉고 먼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에 들러 옥토넛 장난감을 하나 손에 쥐고서야 눈물을 닦고 웃었다. 집에 도착해서 쓰러지듯 잠이 들어버린 아이에게 선풍기를 미풍으로 틀어주고 곁에 앉아 이것저것 검색을 하다 나도 곁에 누웠다.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젤리 줘서 미안해"


그러고도 마음이 불편해서 다이어리 여기저기에 아이의 치아 상태에 대한 반성문을 아주 길게 적었다. 그리고 나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다음 주 예약을 다시 확인했다.

한 달여 만에 아이의 치과 치료가 다 끝나 불소도포만을 남겨놓은 지금, 나는 왜 아이에게 그렇게나 미안했을까, 왜 의사 선생님 앞에서 나는 죄인처럼 이런저런 변명을 할까. 이건 비단 치과에서만이 아니라 모든 병원에서 나는 늘 죄인이다. 성적표를 감추던 어린 시절의 나처럼 그저 늘 죄책감과 변명을 달고 있다.


엄마는 왜 늘 병원에서, 그리고 아픈 아이 앞에서 그렇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들까. 내가 마치 그동안 아이를 잘 돌보지 못해 받은 성적표처럼 부끄럽고 민망할까. 길을 다니다 보면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다 보면 아이의 상처에 옷차림에 간섭하는 수많은 말과 시선으로 늘 움츠러든다.


아이는 마치 걸어 다니는 엄마의 성적표 같다.


아이는 다 아프면서 자란다지만 아이의 충치는 하리보 젤리를 너무 많이 사준 나의 잘못 같고 어젯밤 선풍기를 너무 오래 틀어 배가 아픈 것 같다. 70을 바라보는 나의 친정엄마는 이혼한 오빠는 다 엄마가 잘못 키운 탓이라 한다.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남동생도 다 엄마 탓인 것 같다고 한다. 잘 키운 것도 못 키운 것도 다 엄마의 책임인 듯 우리는 짐을 늘 짊어진다.


아이는 엄마의 성적표가 아니다.


내가 잘해서 내가 못해서 그렇게 아이가 잘 자라고 못 자라는 것이 아니다. (학대의 경우는 예외다. 당연히) 나는 늘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고 사랑했고 보호했고 돌보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나의 영역이 아니다. 아이의 충치는 적당히 단 걸 먹이고 열심히 양치질하는 습관을 들였지만 홈이 깊은 아이의 어금니와 만난 결과일 뿐이다. 치과를 잘 데려갔고 잘 치료를 시작했으니 나는 최선을 다해 할 일을 모두 했다. 앞으로는 하리보를 좀 줄이고 다른 간식을 마련하는 것 그것이 할 일이다. 그저 상황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뿐이다. 내가 못난 엄마라고 탓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난주 잔디밭에서 놀다 풀독이 올라 엄청난 알레르기가 올라온 아이의 다리를 보며 처음으로 나는 내 탓을 하지 않았다. '아 아이가 알레르기가 있구나. 앞으로 조심해야지' 생각하고 병원에서 알레르기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열심히 발라주었다. 아이도 잘 이겨내주었다. 아마 당분간은 풀밭에 가지 못할 것이다. 벌레기피제도 구입해서 늘 가지고 다니기로 했다.


예전 같으면 "애기 다리가 왜 이래~"이러면 "뭔 상관이야"라며 째려보았을 텐데 이번엔 웃으며 그냥 "접촉성 알러지래요"했다. 그저 나는 아이와 함께 즐겁게 놀았고 아이의 알레르기가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으로 알았고 앞으로는 좀 더 조심하면 될 것이다.


아이는 나의 성적표가 아니라 그저 나에게 맡겨진 귀한 손님이고 친구일 뿐이다. 최선을 다해 돌보고 떠날 때가 되면 그저 떠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기도하면 될 뿐이다. 앞으로 더 많은 일들이 있겠지만 그때마다 나는 내 책임을 스스로 캐물으며 자책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이가 혹시 나의 실수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진심을 다해 사과할 것이다.


아이는 나의 성적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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