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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놀이터

INFP 엄마의 새로운 세상 적응기

by 서박하
<INFP 성향>

겉보기 특성은 공상적이며, 인간 관계에서 타인을 직접적으로 지배하려는 성향이 없고 뒤에서 소수자들의 편에 서 주기도 해서 편해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 누구하고든 깊게 어울리기가 조금 힘들고 독고다이를 많이하는 성격. 그래도 어느정도의 공감 능력은 있어서 다른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편을 조금 들어주면서 나름대로 중재자의 역할을 잘하며, 비슷한 공감대에 한번 친해지면 매우 깊게 어울릴수도 있는 유형이다. 성격상 가장 어울리는 직업군 자체가 작가, 미술가, 사진가, 디자이너 등인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 경제적으로는 평균적으로 볼때 조금 빈약한 편이고 집에서 가족들하고 지내는 경우도 많다. 나름대로 화목한 환경이 갖추어진 사회에서라면 이들은 스트레스도 최대한 덜 받으면서 꾸준히 일을 하며 돈을 잘 버는 생활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지극한 이상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은 아쉽게도 실용성과, 경제력에 따라서 그 사람의 사회적인 가치가 결정 되어버리는 물질주의, 규율, 사회적인 통념, 센스있는 가식을 중시하고 내리갈굼과 정치적인 다툼, 경쟁이 만연한 사회에서는 가장 쉽게 도태될 수 있는 성격들 중에 하나다. 한마디로 자본주의 사회에 적응하기 가장 힘든 유형 중 하나 . (출처: 나무위키)


나는 INFP다. 뭐 MBTI검사가 모든 것을 다 말해줄 수는 없지만 그래도 많은 부분을 설명해준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하고 혼자있는 것을 좋아한다. 친해지면 밝고 명랑하게 보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조용하고 어둡고 의기소침해 보인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친해질 필요를 잘 못느끼기 때문에 어디서든 좀 겉도는 편이고 그게 오히려 더 편하다. 학교다닐때도 친한 친구 1-2명만 있으면 그 외에는 관심없이 조용한 편이었다. 직장에서도 같은 팀원들 이외에는 특별히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은 없었다. 오며가며 탕비실에서 눈인사하는 것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중고등학교시절 새로운 학원에 가면 일주일 내내 설사를 할만큼 새로운 환경은 스트레스였다. 간신히 친한 친구들이 생기고 나야 편하게 다녔다. 그 시절 나에게 먼저 다가와준 친구들에게 다시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결혼 후에는 특별히 새로운 인간관계가 생길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 새로운 세상이 순차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산후조리원이었다. 조리원동기는 군대동기같다더라 동기들을 잘 만나야 한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다들 친하게 지낸다고 들었다. 그래서 밥을 따로먹는 조리원에 가려다 가격의 벽에 부딪쳐 평범한 산후조리원에 갔다. 아무말 없이 밥먹는 분위기가 처음에는 참 좋았는데 다들 친해지기 시작하면서 참을 수 없는 어색함에 몸둘바를 몰랐다. 그러다 조리원 산모님들 중 한분이 말을 걸어주시면서 간신히 친해지고 카톡 단톡방에 들어가 조리원동기가 생겼다. 아이들이 크고 다들 이사가면서 이제는 흐지부지 만나지 않지만, 그래도 출산 초반에 많은 의지와 위로가 되주었다.


그리고 이제 어린이집에, 아니 하원 후 놀이터에 적응해야 한다는 걸 알게되었다. 어린이집이야 아이가 적응하면 되지만 하원후 들리는 놀이터에는 내가 알지 못한 세상이 있었다. 그동안은 일을 하느라 픽업을 친정부모님이 해주셨는데 프리랜서로 전환을 하면서 내가 픽업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놀이터에 들어가게 되었다. 놀이터에서 아이와 노는게 뭐가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나도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 곳에는 이미 친하게 지내는 아이들과 보호자들 (엄마, 할머니, 가끔은 할아버지)이 모여있었다.


아이는 놀이터에 들어가면 힘차게 아이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나는 벤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때까지는 아무일도 없었다. 그런데 한 엄마가 간식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이는 먹고 싶어했다. '가서 달라고해' '엄마가' '아니야 네가 먹고 싶은 거니까 네가 달라고 해야지' '힝...'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얻어먹지 못하고 돌아왔다. 아이들 주변을 빙빙 도는 딸을 보는 내 마음은 매우 불편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고민끝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하루에 한시간씩 아이와 함께 놀이터에 머물기로 결심하는 거였다. 이런걸로 결심까지 해야 하는 내 자신이 좀 싫기도 했지만 이것이 나의 최선이라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첫째 날, 편의점에서 산 유기농 주스를 챙겨서 놀이터에 들어갔다. 엄마들 곁에 자리를 잡았다. 등하원하면 얼굴을 알게 된 엄마와 눈인사를 했다. 아이에게 주스를 쥐어주고 친구에게 주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아이는 주스를 주고 뻥튀기를 받아왔다. 오늘의 할일은 다 했다. 한시간 땡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날, 오늘도 유기농 주스를 샀다. 다른 엄마들이 가득 있었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을 잘 다스리고 조용히 앉았있었다. 역시나 아이들을 간식을 주고 받으며 먹기 시작했다. 나도 주스를 꺼내어 아이를 앞세워 나눠주었다. 그 곳의 엄마들은 내 딸에게 이름을 물어보고 고맙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나와도 눈인사를 나누었다. 엄마들 중 한명이 커피를 사서 나에게도 나누어 주었다. 머리가 다시 복잡해졌다. 내일은 커피를 사와야 하나.


셋째 날, 비가온다. 다행이다.


넷째 날, 아이를 꼬셔서 맥도날드에 데리고 갔다.


다섯째 날, 아이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놀이터에 들어갔다. 오늘은 간식도 안사왔는데. 아이는 그새 눈에 익었는지 엄마들과 아이들 사이에 서서 천연덕스럽게 간식을 얻어먹었다. (네가 나보다 낫다) 그러더니 핫도그를 사러 간다는 다른 엄마의 손을 잡고 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당황해서 '어, 하늘아 어디가' 물었다. 5개월즘 되 보이는 아기와 하늘이 또래의 아이의 엄마인 그녀는 '아이가 참 친화력이 좋네요. 새로 이사오셨나봐요?' ' 아, 어린이집 다닌지는 좀 됬는데 놀이터에 온지 얼마 안되었어요 그동안 일을 하느라...' 당황하니 말이 길어졌다. 그녀는 하늘이의 손을 잡고 동네 핫도그집으로 가 핫도그를 사서 하늘이와 놀고 있는 아이들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나는 부랴부랴 주스를 사와서 나눠 주었다. (이제 주스 말고 뭘사야하나...). 아이는 놀이터에 뛰어들어가 나뭇가지를 들고 친구와 개미를 따라다니며 까르르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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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향해 걸어가는 아이>


'엄마 내일도 놀이터 올래요'


아마도 아이가 클 수록 더 많은 세상이 나와 아이를 기다릴 것이다. 아이에게는 새로운 학교, 선생님, 인간관계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이가 친구와 싸우면 전화도 해야할 것이고 학부모모임을 다녀야 할것이다. 친구들이 놀러오면 간식도 줘야하고 아이가 놀러가고 싶다면 친구엄마에게 전화해서 이야기도 해야할 것이다. 누군가에겐 숨쉬듯 쉬운 일일텐데 나에겐 아이를 낳기로 결정한 것보다 더 용기가 있어야 하는 일이라면 믿어줄까.


나는 간식을 가방에 잔뜩 싸들고 앉아 아이를 바라본다. 커피를 받고 또 과자를 나눠주고. 간간히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집으로 돌아올것이다. 하루에 최소 한시간은 아이와 놀이터에 있어주기로 결심을 하고 플래너에 적어넣었다. 오늘의 to do list: 놀이터가기.


이제 3년 6개월된 엄마는 3년 6개월된 딸과 함께 자라간다.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나도 성장할 수 있다면 좋을텐데, 나보다 늘 아이는 빠르게 자란다. 아이는 부쩍 자라는 데 나는 늘 부족한 엄마라 미안하기도 하다. 아이 걷고 뛰고 말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자라는 동안 나는 점점 집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4계절 밥을 해먹이고 옷을 갈아입히고 병원을 데려가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나있었다. 아이의 세상은 넓어지는데 나의 세상은 그대로다. 이대로가면 어딘가 구멍이 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는 INFP라는 성향 안에 숨어있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도 알을 깨고 나오지 않는 병아리처럼. 이제는 나도 한발짝 내가 그린 동그란 원 밖으로 나와야 할 시간이다. 한꺼번에 다 극복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이런성향이야-라고 단정짓던 것들을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 아이를 위해, 아니 더 성장해갈 나를 위해.


사랑하는 딸아, 엄마도 너의 작은 걸음을 따라 걸어갈게. 너는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너의 세상을 향해 나아가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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