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에 대하여
아이의 첫번째 기관은 어린이집이었다. 한참 코로나 시기이기도 했고 어린이집 종일반에 보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우리 가족은 어머니의 도움을 받아 10시쯤 등원해서 1시쯤 하원하는 루틴을 잡고 3세를 보냈다. 4세 때 부터는 10시쯤 등원해서 4시에 하원을 시켰다. 어린이집 엄마들은 대부분 맞벌이었고, 한 반에 전업맘은 한명이었다. 이 곳에 이사올 때에 지인으로부터 '이동네 워킹맘은 정보를 얻기 어렵다.' 라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것도 아니구나 싶었다.
5세때에는 유치원으로 옮겼다. 영어유치원도 고민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가서 상담도 받아보고, 사실 대기 등록도 했었다. 그러나 인기 많은 유치원에 당첨되며 고민없이 잘 뛰놀 수 있는 기관으로 아이를 보냈다.
영유를 보내지 않은 첫번째 이유는, 자랑스레 세계 어느 나라에 여행하든 학습을 할 수 있는 태블릿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제공해 주신다는 원장님의 설명 덕분(?)이었다. 놀러가면 그 나라 도시를 보고 역사를 알고 정취를 느껴야지 무슨 태블릿 숙제란 말인가. 고개를 절로 저었다. 자랑스레 말씀하시던 체육시설도 내 눈엔 우선 환기부터 성에 차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는 아이들의 80%가 안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아, 난 안되겠다.' 결심에 도장을 쾅쾅 찍었다. (영어유치원을 보내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저의 삶의 기준과 조금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애프터 학습을 시키기도 어려워 보였고요 .. ^^)
아무튼 이 애미의 고집과 아이 아빠의 삶의 기준이 맞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키우기로 하였다.
유치원에 가니 전업맘과 워킹맘의 비율이 5:5로 바뀌었다. 그 간에 그만 둔 엄마들도 있었고, 긴 휴직을 시작한 엄마도 있었다. 일을 하더라도 개인 사업을 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기술을 이용한 단기 아르바이트 정도를 하는 엄마들이 많았다. 나처럼 풀로 일을 하는 엄마들의 비율은 30% 정도였다. 그나마 시류에 맞서 소신을 지킨다 자부하는 무리들이 모여 그런가 대부분 사고는 유연한 편이셨다. 물론 몇몇의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셨지만.
그리고 유치원 이외의 사교육을 조금씩 시키기 시작했다. 낯을 가리는 아이라 소규모 학원이나 과외를 시켰다. 그러던 어느 날 시작한 예체능 학원에서 말로만 듣던, 아니지 상상 속 '그 엄마'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외제차 중에서도 P사나 M사 등 최상급의 브랜드 차량을 운전하고, 막 들고 막 신는 신발과 가방은 H사의 제품들, 잘 정돈된 헤어스타일. 화려하지 않지만 그냥 부내가 풍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체능학원이라 그런지 서로에 대한 큰 관심도 없었고, 봐도 목례 정도에서 끝내곤 했다. 목례를 하며 가까이서 보니 눈에 띄는 것은 깨끗한 인상과 남 눈치 보지 않고 신경쓰지 않는 태도였다. 엄마들의 모임도 없었다. 그저 이미 알고 지내던 사이 둘둘씩 이야기하며 다닐 뿐이었다. 그 사이 나도 한 엄마와 친분을 쌓았다.
사실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으니 사립초등학교 지원 역시 망설여지는 것은 있다. 사립초 당첨이 어렵기도 하지만 설사 된다 하여도 영어를 a,b,c로 나눌 텐데 괜찮을까. 그런 마음이 영판 없다면 거짓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매일 수영도 하고, 다양한 예체능도 배우며 기초체력을 튼튼히 해주고 싶은 마음이 훨씬 크다. 한글도 일찍 깨우쳤고, 한자와 역사도 연산도 공부한다. 심도있게 집중학원을 보내는 건 아니고 가볍게 하는 학습이지만 영어라는 한가지를 제외하고는 오히려 아주 만족스런 교육을 받고 있어 그 부분이 좋다.
영어 수학을 놓겠다는 것이 아니다. 때가 되면 해야겠지만 남들이 한다고 시작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원하는 인생의 방향성. 그것을 아이에게 제시해주고 싶다. 벅찬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추억일 것이다. 남편은 나도 모르는 사이 캠핑용품으로 창고를 가득 채웠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와 여행을 간다. 사실 체력적으로 많은 소모가 되긴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되고 미룰 수 없는 일이기에. 하루라도 더 좋은 기억과 추억을 쌓아 떡잎 두툼한 단단한 아이로 자라길 바라 마지 않는다.
- 세번째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