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래마을의 레스토랑
조금 웃픈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나 꺼내본다.
내 나이 7살이었다. 갑자기 분위기 좋은 식당이 너무너무 가고 싶었다. 엄마에게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에 가고 싶다고 했다.
아빠는 출근하고 엄마와 나와 동생이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찾아 삼만리"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 시절에 인터넷이 있었으랴, 아님 네이버 리뷰어가 있었으랴, 천리안도 나우누리도 나오기 전이었는데.
종이지도에 식당과 관련된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
그렇게 먼 길을 걷고 걸어 한 경양식 집에 도착했다. 따끈한 수프와 이탈리안돈까스를 먹었는데, 맛은 기억이 나지 않고 그냥 고동색 테이블에 자주색 의자, 그리고 나긋하고 매너 좋은 직원이 식기류를 놓아주었던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애써 분위기 잡으려 조용 고요하게 식사하던 그 시절의 나는 왜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냥 그러고 싶었다. 엄마는 요즘도 가끔 그날의 일을 떠올리며 웃으신다. "식당을 가려해도 분위기 좋은 식당이 어딨는지 알았어야 말이지." 하시면서.
그렇다고 우리 집이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었다. 그 시절에 가장 좋은 레스토랑은 63뷔페였고, 우리가 주로 하던 외식은 여의도 고깃집, 동네 횟집, 아니면 일요일 목욕탕에 갔다가 코스처럼 가던 아꾸찜 집 정도였다.
얼마전 딸아이가 갑자기 예전에 (호텔)결혼식장에서 먹었던 스테이크가 먹고 싶다고 했다.
우린 아무 고민도 않고 편한 복장으로 집 앞 레스토랑에 갔다. 집 앞 레스토랑이라 하여도 더러는 누군가에게 약속장소로 잡아도 전혀 손색이 없을 멋진 곳이었다. 그렇다고 가격이 어마어마하게 비싼 것도 아니고. 우리의 기준에서 이정도의 사치는 부려도 괜찮겠다, 싶은 가격대였다.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아이도 좋아하니 우리도 좋았다.
그 순간 어린시절의 내가 떠오르며 '세상 참 좋아졌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좋아진 것도 있지만 우리가 서래마을에 살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물론, 성수, 한남, 청담, 압구정.. 요즘 어디든 좋은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 사니까. 또 그렇지 않은 분위기의 동네들도 있으니까. 아니면 너무 부담스러운 공간도 있을거고. 언제나 문만 열만 갈 수 있는 느낌있고 맛있는 레스토랑이 가득한 이곳이 참 좋다고 생각했다. 더불어 조금 힘들기도 하지만 열심히 일 해서 아이와 우리 가족 이렇게 고민없이 외식 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그렇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서래마을의 레스토랑을 소개해 볼까 한다.
이제 시작하는 브런치에 광고도 지인소개도 아니다. 그냥 서래마을은 이런이런 분위기이고 이런 레스토랑이 있어요. 그래서 좋아요- 정도의 주관적인 글이다.
서래마을에만 50개가 넘는 레스토랑이 있다. 모두 하나같이 특색있고, 고루한 곳이 거의 없다.
내 최애 레스토랑이 일단 저 리스트에 나오지 않으니 사실상 더 많은 레스토랑이 있을 테다.
아이를 학원에서 픽업하고 집으로 오는 길에 아이가 지나가다가 한 레스토랑 내부를 보더니 '저기서 밥을 먹고 가고 싶다'고 했다. 들어갔다. 즉흥적으로 들어간 곳이지만 외국인들의 비즈니스 미팅부터 특별한 날을 위한 예약을 해서 오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사장님도 친절하시고 공기 자체가 포근하고 세련되었다.
즐겁기 위해 마음먹고 찾는 곳이니 그 곳에 얼마나 기분 좋은 에너지가 공기 중에 떠돌고 있었을까.
결혼 초기에 서래마을이 아닌 다른 곳에 살 때에 남편이 저기 보이는 '줄라이'를 예약해서 갔었다. 유명 쉐프님이 운영하시는 정통 프랑스식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함지박사거리에 위치한 델리쎄, 도우룸, 그리고 카페거리의 여러 레스토랑들. 모두가 한결같이 가고 싶은, 가볼만한 곳으로 가득하다. 진심 없이 생겼다 없어지는 그런 가게는 거의 없다.
어느 날 와인이 땡길 때 집앞에 가서 화이트 와인 한 잔 시켜 저녁을 먹는 날이면 참 기분이 좋다. 뭐 대단히 화려해서가 아니라, 그냥 이 정취를 느낄 수 있음에 벅차오른다. 와인 한 잔 후 집에가서 책도 읽고 과일도 한 알 먹고 자야지 싶은 소소한 즐거움도 챙기게 된다.
어린시절 못다푼 분위기 좋은 레스토랑 방문을, 서래마을로 이사한 뒤 마음껏 누리는 중이다. 부모님과 식사 할 때에도 기분이 좋다. 일단 맛있고 모두 친절하다. 부담없이 언제든 갈 수 있기에 행운이다.
서래마을에 사신다면, 아니면 들르실 일이 있다면, 한번씩 입맛에 맞는 레스토랑을 몇 군데 방문해 보시길,
추천드린다.
ps.
다음에는 카페에 대한 글을 적어볼게요. 물론 모든 카페에 다 가 보진 못했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