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총성은 울리지 않았고, 커피 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서부 영화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보셨나요?
1968년 개봉한 이 작품은 《황야의 무법자》와 함께 서부극의 흐름을 바꾼 영화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과 엔니오 모리꼬네 작곡가가 함께 만든 서부극의 결정체입니다.
레오네 감독은 이 영화 이전에도 서부극을 재해석한 ‘달러 3부작’을 통해 스파게티 웨스턴의 새로운 전형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 달러 3부작
《황야의 무법자》(1964)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석양의 무법자》(1965)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밴 클리프
《석양의 무법자》(1966)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 음악: 엔니오 모리꼬네 / 주연: 클린트 이스트우드, 리 밴 클리프, 일라이 월릭
이 세 편으로 웨스턴 장르의 새로운 시대를 연 레오네 감독은 1968년작 《옛날 옛적 서부에서》를 통해 더욱 정교해진 연출과 아름다운 미장센을 선보입니다.
<영화와 커피> 이야기를 시작해볼까요?
《옛날 옛적 서부에서》: 아직 총성은 울리지 않았고, 커피 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 기차역, 긴장감이 쌓이는 도입부
기차역에 도착한 세 명의 악당. 그들은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를 기다립니다.
이렇게 영화 도입부는 무려 14분 동안 이어집니다. 이 시간 동안 벌어지는 일이라곤:
풍향계가 바람에 삐걱이며 돌아가고,
지붕 끝에서 물방울이 악당의 모자 위로 천천히 떨어지며,
파리 한 마리가 또 다른 악당의 얼굴을 맴돌 뿐입니다.
이 장면에서 대사는 단 몇 마디뿐.
침묵 속에서 사소한 소리들이 긴장감을 점점 쌓아 올립니다.
기차가 도착하기 전까지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간도 멈춘 듯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차가 도착합니다.
정적을 깨고 퍼지는 하모니카 소리. 그리고 이어지는 서너 발의 총성.
- 정적과 사운드가 만드는 긴장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시간을 늘려 긴장을 극대화하는 데 능숙합니다.
정적이 길어질수록, 폭발의 순간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이 영화에서 사운드는 단순한 배경음이 아니라 중요한 캐릭터를 담당합니다.
레오네 감독은 이렇게 정적과 소리의 대비를 통해 극적인 긴장감을 창조해냅니다.
총구 속에 갇힌 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
기차가 역에 도착하며 울리는 굉음
이 대비 속에서 관객은 서서히 조여 오는 긴장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됩니다.
- 기다림과 폭발, 서부극의 새로운 리듬
기다림이 멈춰 있음만을 뜻하지는 않죠.
기다림은 긴장감을 쌓아 올리는 중요한 과정이기도 합니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폭발의 순간은 더욱 강렬해집니다.
이것이 바로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미학입니다.
- 커피와 기다림, 그리고 순간
서너 발의 총성이 울리는 순간처럼, 커피 한 잔을 추출하는 과정도 긴장을 조성합니다.
핸드드립 커피를 내리는 순간은 이 영화의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은 느림과 닮아 있습니다.
수동 그라인더가 천천히 돌아가고
전기포트에서는 물이 끓고,
드리퍼 안 커피 분말 위로는 뜨거운 물이 떨어집니다.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의 정적,
총성이 터지기 전의 숨 막히는 순간처럼
커피 한 방울이 서버에 떨어지기 전까지의 기다림도 긴장을 만듭니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것이 완성됩니다.
세르지오 레오네의 영화처럼, 커피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다림 속에서 완성된다.
이제, 커피를 한 모금 마실 시간이다.